2012년 6월 24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물 위에 던져라”
설교 본문 : 전도서 11장 1-8절
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6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7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0. 들어가는 글
요즘 극심한 가뭄에 기록적인 폭염까지 기승을 부리는 이상 기온 현상에 한반도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돌보는 것’으로 받아드리지 않고‘파괴하는 것’으로 받아드린 죄의 결과입니다. 지난주 큐티를 하면서 받은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이후에 인기가 급상승하였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을 삼으려 했습니다. 주님은 군중들의 요구에 못이긴 척 임금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주님이 임금이 되셨다면 세상의 어떤 임금보다도 탁월한 임금이 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군중들의 모든 요구를 뒤로한 채 주님은 혼자 산으로 떠나셨습니다(요6:15). 주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 외에는 아무런 사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주님의 뒷모습이 내 마음속에 잔영으로 남아서 크나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세상의 인기와 명예와 권력을 뒤로한 채 혼자서 산에 기도하러 오르는 주님의 뒷모습이 내 심장을 찌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하였습니다. 오늘 말씀도 오병이어 기적처럼 떡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떡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지를 나누면서 은혜 받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왜 떡을 물 위에 던지는가?
오늘 말씀에서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고 합니다(1절). 쉬운 성경으로 보면 “네 씨앗을 물 위에 던져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배경이 있습니다. 나일 강 유역은 아프리카 대륙의 1/10 차지합니다. 나일 강의 가장 큰 특징은 정기적인 범람입니다. 나일 강 유역은 정기적인 범람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런 강의 범람의 시기에 맞추어 물에 씨를 던지는 농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범람하여 들어가는 토지에 씨들이 자리를 잡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나일 강에 씨를 던지는 의미가 우리에게 어떤 영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첫 번째로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의 유익이 아니라 여러 날 후인 미래의 수확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금년에 130년의 전통을 자랑했던 세계적인 기업 코닥 필림이 파산 신청을 하여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전혀 준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미래를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방식만을 끝까지 고집을 하다가 끝내 문을 닫은 것입니다. 한국 교회도 교회학교 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인구의 감소도 있지만 교회가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는 작업을 소홀히 한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과 맞물려 한국 교회도 쇠퇴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바쁜 생활에 떠밀리면서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기도하는 일은 미래를 위해 씨를 뿌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바로 응답이 주어지는 것도 있지만 인내하며 기다릴 때 미래에 주어지는 것들이 더 많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미래의 영적인 수확을 위해 끊임없이 씨를 뿌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물에 던진 씨앗 중에서 어느 것이 땅으로 흘러가 잘 자라날지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농부들이 씨를 뿌리지만 자라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 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3:6). 너무나 많은 성도님들이 자신들이 열매를 맺으려고 힘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열매는 내가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맺게 하여주십니다. 자신이 맺은 열매는 개인의 영광이 되지만 주님이 맺은 열매는 하나님의 영광이 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세 번째로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면 재앙의 날에 어떤 사람이 도와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웃 사랑을 베풀면 훗날에 열매를 맺어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2절). 물 위에 씨를 던지는 것도 자신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일 강이 범람할 때 씨앗들이 자신의 토지로 흘러들어오면 좋겠지만 어느 곳으로 흘러갈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자신이 씨를 던졌지만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자신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잘 되게 하는 것입니다.
2. 자연의 기후보다 더 크신 분은 누구인가?
오늘 말씀에서 인간은 자연의 기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3절). 지금의 가뭄이나 폭염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니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고 합니다(4절). 여기서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자연의 기후 탓을 하면서 씨를 뿌리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어려운 환경 탓을 하면서 기도의 씨를 심지 않는 삶을 지적합니다. 자연의 기후에 대하여 어찌 할 수 없을지라도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서 “만사를 성취하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5절). 우리가 연약하여 어찌할 수 없을지라도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을 쓴 중국의 윈 형제가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여 독일로 갑니다. 유럽에서 “백 투 예루살렘”의 선교 운동을 펼치다가 지역 교회들을 보면서 실망을 하였습니다. 실망한 첫째 이유는 교회의 건물은 화려하고 웅장한데 사람이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전혀 없고 머리칼이 센 할머니들만 몇 명 남아 있었습니다. 둘째 이유는 큰 교회 안에 고가의 장비와 호화로운 카펫과 최첨단 음향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영적인 파워가 없었습니다. 셋째 이유로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유럽 교회에 순종이 없었습니다. 신앙은 아는 것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유럽 교회에 유명했던 수많은 설교자가 있고, 찬란한 교회 전통이 있고, 심오한 신학이 있고, 성경을 가르치는 테이프가 범람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없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유럽 교회처럼 웅장한 교회 건물들을 짓고 있으며, 그 안은 호화로운 최첨단 장비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또한 신학교가 넘쳐나고, 설교 방송도 채널만 돌리면 들을 수 있고, 신앙 서적과 설교 테이프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도 진정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들이 남아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한국 교회에 남아 있을 때 유럽 교회처럼 되지 아니하고, 영적인 파워가 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진정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는 말씀을 많이 아는 자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 할 수 있는 자입니다.
3. 앞일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늘 말씀에서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5,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하는 인생은 우리의 앞일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자신들이 대단히 무언가를 많이 아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우리의 앞일을 알지 못함을 받아들이며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인생이 겸손한 인생입니다. 앞일을 알지 못하는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은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라고 말씀합니다(7절). 무엇을 소유한 것에 인생의 즐거움이 있지 않고 해를 볼 수 있는 생명이 존재하는 것에 가장 큰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유의 가치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존재의 가치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통하여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호수 가에 살던 어린 소년은 어느 날 물놀이를 하던 중 가장 아끼던 은돈을 잃어버렸습니다. 호수 바닥에 떨어진 은돈은 다시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즐거움이 사라진 것처럼 한 동안 우울하게 지내야만 했습니다. 성년이 된 어느 날 주인을 모시고 성전에 갔는데 성전 세를 요구하였습니다. 주인은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고 하였습니다(마17:27). 그는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순종하였습니다. 먼저 낚은 고기의 입을 벌려 은돈을 꺼낼 때 그가 과거에 호수에서 잃어버렸던 은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베드로는 어린 시절 물 위에서 은돈을 잃었을 때의 우울함보다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은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그 이유는 잃었던 은돈을 다시 찾게 하시분이 잃어버린 영혼을 다시 찾는 주님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 위에 씨를 던져야 합니다. 성도님들은 어떤 씨를 던지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람의 판단으로 예측할 수 없지만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주님이 다시 찾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 씨는 자신만을 위해 던지는 씨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던지는 씨도 될 수 있습니다. 주변 환경의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던지는 씨앗이 될 때 주님이 삽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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