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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아들을 죽인 이유?/ 마태복음 21장 33-41절 / 7월 15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7-15 추천 0 댓글 0 조회 691

2012년 7월 15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주인의 아들을 죽인 이유?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1장 33-41절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제 가슴에 다가왔던 글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이는 결코 절망 하지 아니하며, 악한 자가 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부부간에 좋은 추억들이 많이 쌓이면 그 관계는 결코 절망하지 아니하며, 악한 관계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추억을 물려주면 자녀들의 인생은 결코 절망하지 아니하며, 악한 길로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좋은 추억이 있는 영혼은 결코 절망하지 않으며, 악한 영혼이 되지 않습니다. 부디 우리 인생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악한 농부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주인과 좋은 추억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좋은 추억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악한 길로 간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면 선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이 하나님과 어떤 추억을 기억하며 어떤 열매가 맺고 있는지 돌아 불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맡기신 목적은?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를 둘렀습니다. 거기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었습니다. 집주인은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으로 떠났습니다(33절). 완벽한 세팅으로 부족함 없이 준비를 해주었습니다. 농부들이 준비한 것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집주인이 농부들을 얼마나 신뢰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집주인이 농부들에게 준 전적인 은혜입니다. 집주인과 농부들의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은혜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와 동일한 은혜의 만남입니다. 집주인이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왜 값없이 주었습니까? 농부들이 포도원의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구원을 값없이 준 이유도 동일합니다. 우리들이 구원의 값을 지불할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공짜라서 값없이 받은 것이 아니라 그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깊이 알아가는 자가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아가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은혜로 맡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집주인은 농부들에게 때가 되어서 열매를 기대하셨습니다(34절). 처음 약속에 따라서 전체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세를 기대하셨을 것입니다(33절). 농부들은 집주인에게 세를 받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열매를 받치는 것을 거절한 이유에 대하여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열매를 많이 거두었는데도 받치기를 거절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가 주인의 은혜를 전혀 모르는 자입니다. 원래는 길거리에서 들 포도나 따먹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데려다 일꾼으로 사용하고 품삯만 주어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포도원의 경영을 맡기는 청지기로 삼았습니다. 주인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고 더 소유하려는 죄악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동산에서 주님이 은혜로 주신 모든 실과를 감사하지 못하고 선악과까지도 더 소유하려는 마음이 타락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왜 주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기보다는 더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할까요?


후자는 열매를 거두지 못하였기 때문에 받치지 못한 경우입니다. 포도원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합니다. 주인의 뜻을 알면서도 열매를 맺기 위해 일하지 않는 불성실과 불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과의 약속에 대한 직무유기가 되었습니다. 불성실하여 열매는 없으면서도 포도원은 가지고 싶은 소유욕은 있습니다. 농부들이 게으르다고 탐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도 주인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열매를 맺는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물이 많아서 홍수로 죽는 경우가 전자의 경우라면 물이 없어 가물어서 죽는 경우가 후자의 경우입니다. 상황은 정반대이지만 근본이유가 물에 달려 있는 것은 동일합니다. 이처럼 열매가 많아서 받치지 못한 경우나 열매가 없어서 받치지 못한 경우나 상황은 정반대이지만 은혜를 모른다는 근본 이유는 동일한 것입니다. 주님은 포도원의 열매를 제 때에 받칠 수 있는 농부들을 찾고 계십니다(41절).


2.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포도원 주인은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빈손으로 보낸 것에 심히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서 바로 포도원을 몰수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와 긍휼로 청지기들에게 세 번째까지 종들을 보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때 주인의 심정은 어떠했습니까?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라며 깊이 탄식하였습니다(눅20:13절). 포도원 주인의 탄식은 열매를 받지 못한 섭섭함이 아니라 청지기들과 은혜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은 물질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더 관심을 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주님은 선악과를 몇 개 잃어버려서 가슴이 아파겠습니까? 사랑하는 인간들이 은혜의 관계를 파괴하고 타락의 길을 갖기 때문입니다. 교묘하게도 죄라는 것은 관계들을 단절하고 파괴하게 만듭니다.


집주인은 은혜를 주었는데 농부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이익만 추구하면 죄악의 길로 빠져만 갑니다. 지난주 기독교 신문에서 읽은 칼럼입니다. 이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악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늘 말씀의 포도원의 청지기들과 동일합니다. 포도원 청지기들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는 말씀대로 행했습니다(약1:15절). 그러나 유익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먼저 희생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의 포도원의 주인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한 순간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주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를 친히 실천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요12:24절). 오늘 청지기들처럼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삶은 진정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될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주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은?

집주인은 자신의 아들까지 보내면서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면서 관계를 회복하시고 싶어 합니다. 집주인은 농부들에게 아들을 보내면서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고 합니다(37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존대함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존대하기 위하여 포도원 같은 교회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해야 합니까? 농부들은 포도원의 본질이었던 열매 맺는 것에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 포도원의 땅과 재산을 소유하려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인의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현대의 교회가 영적인 열매를 맺는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처럼 교회가 소유하려는 일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농부들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은 소유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일에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존대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한 구도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 구도자가 찾아와 그에게 성경 한 권을 주고 갔습니다. 구도자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구도자는 쥐들이 그 성경을 갉아먹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을 지켜야겠어!" 그는 성경을 지키려고 마을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구해 왔습니다. 고양이는 우유를 달라고 보챘습니다. 그래서 젖소 한 마리를 구해왔습니다. 그러자 젖소에게 줄 풀이 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목초지를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바빴기에, 그는 자기 대신 일할 일꾼을 고용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일꾼들은 감시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결혼을 해서 아내와 함께 일꾼을 감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활을 한 지 2년이 지나 이제 그는 커다란 집과 고양이와 젖소 열 마리 그리고 아내까지 얻고 유능한 사업가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도 얻었다. 그리고 성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지키고자 한 일이 성경으로부터 떠나는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교회들이 주님 말씀을 지키려다 오히려 교회 사업가로 변해버린 것을 풍자한 글입니다. 본질이 변질 된 것으로는 관계를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아들을 존대하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여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함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삶이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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