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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초청과 예복/ 마태복음 22:1-14절/ 8월 5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8-05 추천 0 댓글 0 조회 715

2012년 8월 5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주님의 초청과 예복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2:1-14절 / 37쪽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0. 들어가는 글

한반도에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불덩어리처럼 느껴집니다. 그나마 더위에 잠 못 이루는 국민들을 런던 올림픽 소식의 감동들이 식혀주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주 가족들과 며칠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캠핑을 하면서는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날에는 물이 흐르는 계곡 옆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때는 더운 줄을 몰랐습니다. 날씨가 더울수록 계곡의 흐르는 물이 시원함을 더해주었습니다. 그 때는 좋은 줄 모르고 당연한줄 알았습니다. 장소를 옮겨서 강가에서 좀 떨어진 평지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때는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견딜만한데 낮에는 더위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서는 계곡 옆이 정말 그립더라고요. 집에 들어와서는 폭염으로 숨이 막히다 보니 멀리 강가에서 불어왔던 바람도 그립더라고요. 사람 마음이 얼마나 간사하던지요. 여하튼 캠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흐르는 물이 사람을 얼마나 시원케 하는지를 새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예수님이 우리 안에 왜 성령의 생수가 흘러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요7:38). 세상은 우리를 열 받게 할 때가 많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흐를 때 세상이 주는 열을 식히며,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함께함으로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흐를 수 있는 은혜로운 삶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초청에 거절한 이유는?

임금이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준비하였습니다(4절).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정합니다. 갑작스러운 초청이 아닙니다. 임금 아들의 결혼 날짜가 잡혔을 때 먼저 예고를 하였을 것입니다. 초청하는 사람과 초청받는 사람의 관계는 임금과 신하의 관계입니다. 신하는 임금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명령하지 않고 초청을 하였습니다. 임금이 신하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았던 사람들이 거절을 합니다. 혼인 잔치의 주인공은 임금의 아들입니다(2절). 누구에 대한 거절이 되는 것입니까? 왕과 왕자에 대하여 동시에 거절을 한 것입니다.


신하들이 임금의 아들 혼인 잔치의 초청에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거절한 이유는 “오기를 싫어하거늘” 이었습니다(3절). 감정적으로 거절을 한 것입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무엇인가를 싫어하는 감정에는 대체로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싫은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를 안다니는 사람들도 그냥 싫은 감정적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저처럼 목회자도 감정적으로 싫은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목회할 때 평상시 탐탁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여자 선교사님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른 성도들은 많은 은혜와 감동을 받는데 내 마음은 냉냉 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의 설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감정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잘못된 감정이 자리를 잡으면 그 감정이 변화되기 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설사 칭찬을 해도 감정이 뒤틀려 있는 사람은 비웃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 주님의 초청에 응할 수 있으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 거절한 이유는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입니다(5절). 철저히 무관심으로 인한 거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암보다 더 두려운 것이 '무관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하나님을 거절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육적인 삶에 지나치게 빠져 사는 나머지 영적인 삶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노아시대에 홍수로 심판한 이유에 대해서도 먹고사는 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지만 영적인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마24:38).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한 시대에 한걸은 더 나아가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처럼 들려집니다. 또한 사람관계도 무관심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교회생활도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게 지내는 것을 편안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이웃에 대한 관심의 회복이 영적인 삶의 지름길이 됨을 깨닫고 실천해야 합니다.


세 번째 거절한 이유는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입니다(5절). 자신의 일밖에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일에 대한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초청에 거절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은 대단히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한가하여 시간이 남는 사람들로 착각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 속에 자신을 감추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것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도피하며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들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일속에 묻혀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일에서 은퇴를 하면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 나머지 인생을 방황하면서 우울하게 보내고 맙니다. 인생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누군가에 초청에 응해주고 초청할 수 있는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 그 안에 행복이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2. 새로운 초청의 기준은 무엇인가?

임금은 자신의 아들 혼인잔치에 미리 초청한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하자 다시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1차 초청이 유대인들을 향한 초청이었다면, 2차 초청은 이방인들을 향한 초청이라고 합니다. 2차 초청에서는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고” 있습니다(9절). 두 번째 초청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종들이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라고 합니다(10절). 초청의 기준이 선과 악이 아닙니다. 임금의 초청에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임금의 초청에 응했느냐? 하지 안했느냐?” 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구원의 기준은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하게 살았더라도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면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암 케리의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는 말이 제 가슴을 뛰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구두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독학을 하여 여러 나라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케리의 친척동생이 자신이 들어가기로 한 옥스퍼드의 단과대학에 케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단과대학의 한 유명한 어학교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중에 그 교수는 케리의 어학 실력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케리에게 “당신이 이 학교에 들어오면 이 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오. 그리고 이 나라의 여왕께서도 당신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의 말에 케리는 이렇게 거절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여왕을 말씀하셨는데, 제게는 이미 저의 전 생애를 건 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여왕보다 더 높으신 분의 초청을 받았고, 그분을 향한 저의 충성은 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케리는 그 교수의 제의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초청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인도 선교를 위해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순종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고 복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복을 입는 의미는?

오늘 말씀은 임금의 초청으로만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임금의 아들 혼인 잔치에 예복을 입어야만 참석을 할 수 있습니다(11절). 우리는 길거리에서 초청 받아 오면서 “어떻게 예복을 준비해서 입을 수 있을까?” 에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풍습은 혼인집에 예복이 준비되어 있어서 갈아입고 들어오면 되는 것입니다. 쫓겨난 사람은 준비된 예복을 거절하고 자신의 옷을 입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함께하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1차 초청에서 오기를 싫어서 “감정적으로 거절한 사람”, “돌아보지 않고 무관심으로 거절한 사람”, “자신의 일이 바빠서 거절한 사람” 모두 임금의 아들 혼인 잔치에 함께 하고픈 마음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2차 초청에서도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참석은 했어도 함께하고픈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에 응한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삶은 예복을 입는 것처럼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성지 순례를 가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갔을 때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는 청동 부조상이 있었습니다. 최근 신문에 실린 내용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야누쉬 코르착이라는 폴란드인 의사로서 유대인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과 학교를 운영하는 교육자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자신이 돌보는 고아원에 느닷없이 나치 독일군이 들이닥쳤습니다. 나치 군인들은 유대인 아이들을 집단 학살하기 위해 군용트럭에 실었습니다. 그는 항의도 하고 애걸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보다 못한 코르착은 아이들과 함께 군용트럭에 올라탔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이 아니니 내리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위로했습니다. “얘들아, 무서워하지 마! 우리는 지금 소풍 가는 거야.” 예쁜 옷과 가방을 들게 한 후에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생사의 기로에서 그는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도저히 아이들을 홀로 죽음의 자리로 보낼 수 없었기에 그는 아이들과 ‘함께’ 죽음의 길을 선택합니다. 당신을 빼주겠다는 나치 장교의 말을 그는 끝까지 거절하고, 아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죽음의 길을 걷는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의 모습은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도 죽음 아래 놓인 죄인들과 ‘함께’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우리들도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하는 예복을 입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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