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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누가복음 13장 22-30절/ 8월 19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8-19 추천 0 댓글 0 조회 482

2012년 8월 1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설교 본문 : 누가복음 13장 22-30절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0. 들어가는 글

올 여름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폭염과 하늘이 구멍난 듯 내리는 폭우를 보면서 세상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더 분명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 신앙 잡지에서 읽었던 글입니다. 초만원인 극장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소식을 들은 배우는 "불이야!" 소리를 지르면 많은 사람이 넘어져서 밟혀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여러분, 지금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한꺼번에 뛰어나가면 모두 죽습니다.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분부터 차례로 나가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관객은 그의 말이 연극의 일부인 줄 알고 손뼉을 치며 웃고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상황이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연기가 스며들어 오고 불길이 순식간에 극장 안을 뒤덮었습니다. 손뼉을 치던 사람들이 삶의 종말을 피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세상 끝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그 사실을 믿으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믿든지 아니 믿든지 세상 끝은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지구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는 증거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좁은 문과 넓은 문 사이에서 어느 방향인가?

어떤 사람이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23절).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대답했습니다(24절). 주님의 대답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구원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는 것은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 구원의 문입니다(25절). 주님은 어떤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줍니까?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에게 열어줍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점검 해보아야 합니다.


넓은 문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넓은 문은 자신이 세상에서 소유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어려움이나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넓은 문은 자기희생이 없어서 그런지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은 주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좁은 문은 자세를 낮추어 겸손히 들어가야 합니다. 일단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몸만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은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삶의 변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에서 넓은 문으로 잘 나가는 것을 축복인냥 포장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넓은 문으로 잘나가는 것은 축복의 길이 아니라 멸망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좁은 문으로 다니면서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아야한다고 선포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피씩 웃으면서 목사님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는 이유가 말씀을 따르는 것은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알든 모르든, 쉽든 어렵든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방식대로 사는 넓은 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하늘 문과 연결 된다는 것입니다.


2. 주님이 문을 열어주는 기준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집주인이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문이 열려있을 때 들어갈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문 밖에서 두드리면서 “주여 열어 주소서”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주님이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고 답변합니다(25절). 문밖에 있는 자들은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고 합니다(26절). 그래도 주님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반복하여 답변합니다(27절). 이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분명히 주님과 알고 있을 텐데 주님은 모른 척 합니다. 주님이 모른 척 하는 이유는 성찬을 나누고, 성경 공부를 한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종교 활동을 하였다는 외적 조건으로 천국 문을 열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성찬을 나누고, 성경 공부를 한 이후에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를 통하여 “우리의 삶의 장소에서 누구와 함께 하였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직분이나 활동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하늘 문을 열러 주십니다.


지난주 저를 고민하게 했던 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한방울 피한방울 남김없이 생명을 희생하신 것이 주일 예배 한두 시간 자리 지키는 사람들로 만들고자 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매주 주일날 한번 나오는 것도 버거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으로 주일날 교회 나와서 한두 시간 자리 지키는 것으로 자신의 종교적 의무를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희생을 주일날 교회에서 한두 시간 자리 지키는 관계로만 만든다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헛되이 여기는 것이 됩니까! 세상에서도 우리를 몇 시간씩 묶어둘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얼마든지 넘쳐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일날 교회에서만 자리 지키는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장소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주님을 우리를 기억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천국 문은 내가 주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아는 자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기억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에서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고 하십니다(27절). 여기서 행악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사느냐?” 아니면 “피조물 중심으로 사느냐?”의 악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을 사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중심으로 사는 모든 것은 행악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행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그들의 고백은 단지 거짓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한다”라고 합니다(요일1:6). 여기서 “어둠에 행하면”은 행악과 같은 의미로 세상 방식으로 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일치를 이룰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되어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난주 주님이 저를 책망가운데 깨닫게 하신 은혜입니다. 하루는 설교를 준비하는데 온갖 잡념들이 말씀 묵상을 방해하였습니다. 너무 집중이 되지 않아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어서 최전도사님과 서점에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행악에서 떠나 거룩해지기를 소망하지만 생각부터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주님의 책망이 제 마음속에 들려왔습니다. "네 자신을 거룩케 하려기 때문에 진짜 거룩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성령님과 묵상 가운데 한참 씨름을 하였습니다. 성령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감동은 “너를 거룩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룩케 하는 것이 진정한 거룩이다”는 것입니다. 제가 거룩해지고자 힘써왔지만 번번이 실패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거룩해지고자 하는 것은 여전히 자기중심이고, 자기 의를 나타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저의 실패를 거울삼아보면 하나님을 거룩케 한다는 목적이 없는 거룩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를 나타내고자하는 외식으로 흐르게 됩니다. 우리 자신들이 거룩케 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거 하고자 할 때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쉽고 편하다 하여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넓은 문이 아니라 어렵고 불편하여도 말씀대로 살아가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주님! 내가 주님을 아는 것보다 주님이 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하나님께 기억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자신을 거룩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수 있는 거룩을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부디, 천국 문을 두드릴 때 주님이 아시고 열어주시는 은혜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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