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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를 향한 마음/ 아가서 1장 9-17절/ 8월 26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8-26 추천 0 댓글 0 조회 325

2012년 8월 26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사랑하는 자를 향한 마음

설교 본문 : 아가서 1장 9-17절


9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10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11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12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13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16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17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0. 들어가는 글

여름에 강열했던 폭염도 가을 문턱 앞에서는 기세를 꺾고 있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적의 군대가 한 마을을 점령했습니다. 점령군 대장이 마을 사람들에게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남자들은 모조리 잡아가 노예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모두 풀어줄 것이니 마을을 떠나라! 떠날 때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 한가지씩만은 가지고 가도 좋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자 여인들은 각종 보석을 챙겨 급히 떠났습니다. 그런데 한 여인은 허약한 몸이면서도 엄청나게 큰 보따리를 챙겨 나왔습니다. 검문하던 군인이 이상하게 여겨 보따리를 헤쳐 보니 남자가 그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검문하던 군인이 대장에게 보고했습니다. 대장은 여인에게 “이건 누구인가?” 묻자, 여인이 “제 남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대장이 “왜 명령을 어기는가? 보물을 가져가라 했거늘, 어찌 사람을 메고 나가는가?”라고 하자, 여인이 “제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제 남편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적군의 장수는 여인의 지혜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되어 “남편을 데리고 가도 좋다”는 허락을 하였습니다. 탈무드에 담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입니다. 오늘 아가서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마음

아가서에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신부가 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첫 번째로 사랑하는 대상을 향하여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라고 합니다(9절). 이 표현에 대하여 혹자는 바로는 애굽 왕인데, 애굽은 세상을 의미하고, 준마는 속도가 빠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육신의 기질을 가지고, 세상의 풍습에 빠르게 따라가는 성숙하지 못한 신앙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표현은 사랑하는 대상이 얼마나 귀한지에 대한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먼저는 9절을 시작하면서 “내 사랑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바로의 병거의 준마”는 당시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왕이 타는 말로서 이루 말할 수가 없는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것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은 신부가 된 우리들을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랑하는 대상을 향하여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꿰미로 아름답구나”라고 합니다(10절). 뺨은 여인에게서 사랑하는 감정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가지런하게 땋은 머리털은 질서있는 헌신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목은 순종을 의미하며, 순종치 않는 사람에 대하여 목이 곧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목에 구슬꿰미가 있는 아름다운 목이니, 순종하는 목임에 틀림없습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은 신부가 된 우리들에게 빰에 스며있는 사랑과 땋은 머리털에 있는 조화로운 헌신과 아름다운 목에 담겨 있는 순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사랑하는 대상을 향하여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라고 합니다(11절). 주님이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드시는 것은 우리의 목에 구슬꿰미를 달아주시기 위함입니다. 금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은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친히 만들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한 구슬꿰미로 만들어준 사랑의 은혜를 받을 때 우리들은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금 사슬에 은을 박는 것은 정교하여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사랑에 시간이 필요한 것은 쉽게 얻는 기쁨은 빨리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저에게 어떤 일이든 쉽게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쉽게 얻은 것은 오래 남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힘겹게 얻은 것이 끝끝내 남아 훌륭한 스승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하는 삶(12-14절).

이제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하여 누리는 기쁨입니다. 첫 번째로 함께하는 삶은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라고 합니다(12절). 왕이 되신 주님과 먹고 마시며 침상에서까지 함께하는 삶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향기가 나는 삶입니다. 항상 하는 말씀이지만 우리 자신에게서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향기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스며들었던 향기를 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함께하는 삶은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라고 합니다(13절). 몰약은 방부제이면서 악취를 제거해주고 해충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인들이 작은 주머니를 만들어 몰약을 넣어 품속에 간직하며 지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몰약처럼 품 가운데 간직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들이 몰약처럼 부패하지 아니하고, 죄악의 냄새가 나지 않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주님이 품 가운데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함께하는 삶은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라고 합니다(14절). 엔게디는 광야에서 다윗이 피신했던 곳이고, ‘고벨화’는 유대 지방에서 어린 아이들의 손톱에 물들이는 데에 사용했던 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손톱에 물들이는 꽃처럼 그분의 몸속에 새기시고 항상 기억하십니다. 주님과 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손톱에 스며져 있는 것처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함께하는 사랑이 채워지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립니다. 그러나 우울증보다 더 무서운 것이 조울증이라고 합니다.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안 좋을 때는 감정의 맨 밑바닥 막장까지 내려가 버리는 것이 조울증입니다. 주님과의 사랑도 조울증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과 꾸준한 사랑, 늘 한결같은 사랑, 오래 가는 사랑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3. 사랑하는 대상과의 관계(15-17절).

이제 사랑하는 대상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합니까? 첫 번째 관계 맺음은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라고 합니다(15절). 주님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하여 눈의 대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비둘기의 눈은 소식을 전하는 대상을 잘 분별하여 전달하는 눈입니다. 우리들이 주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하여 영적인 분별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관계 맺음은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라고 합니다(16절). 여기서는 사랑받는 여인이 왕을 향한 고백입니다. 여인은 왕을 향하여 ‘화창하며 푸르다’고 고백합니다. 주님을 향한 관계가 어둠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빛 가운데 있으며, 세상에 물들지 아니한 영적인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관계 맺음은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라고 합니다(17절). 이것도 여인이 왕을 향한 고백으로 들보는 집을 받치는 기둥이며 서까래는 지붕 판을 만드는 받침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 인생의 기둥이 되시며,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백향목과 잣나무의 공통적인 특징은 향기가 나서 벌레들이 틈을 타지 못하고, 하늘을 향하여 곧게 뻗어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백향목과 잣나무가 하늘을 향하여 높이 올라가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받아 성전을 짓는데 귀한 재목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백향목과 잣나무처럼 하늘을 향하여 높이 올라갈 때 주님의 사랑을 받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핍박 가운데 던져지고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 갇힌 신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요한의 눈을 높이 들어 올리셨습니다. 계시록의 본론은 ‘이리로 올라오라’로 시작됩니다(계4:1). 주님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높이 들어 올리셨습니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하나님의 시작과 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분열과 갈등 속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분열의 문제부터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의 영적인 눈을 높이 들어 올리셔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곳으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창세전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신문에서 읽었던 내용입니다. 어떤 신혼부부가 삶은 감자를 앞에 놓고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부인이 감자와 함께 설탕을 가져왔는데, 남편은 고추장을 찾았던 것입니다. 남편 왈, “우리 집안은 대대로 고추장에 찍어 먹어.” 부인 왈, “감자를 어떻게 고추장에 찍어먹어요? 그 집안 참 웃기는 집안이네!” 집안을 들먹이는 부인의 말에 남편은 마음이 상했습니다. 결국 싸움이 커져 집안싸움으로 번졌고 급기야 이혼까지 거론하게 되었습니다. 상담 전문가에게 찾아온 이 부부가 진지하게 묻더랍니다. “선생님은 감자를 설탕에 찍어먹습니까, 고추장에 찍어먹습니까?” 선생님 왈, “저는요, 마요네즈에 찍어먹는데요.” 웃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자신 안에 갇혀서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면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백향목이나 잣나무처럼 하늘을 향하여 높이 올라갈 때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다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가장 귀한 존재로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주님 앞에 헌신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의 향기가 스며들어 나타나게 하옵시고, 부패하지 아니하며, 주님의 손톱에 스며들듯 사랑의 한 몸을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주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하여 영적으로 분별하는 삶을 살게 하옵시며, 항상 영적인 밝음과 푸르름을 유지하며,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높은 곳에 올라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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