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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험에 넘어졌는가?/ 열왕기상 13장 11-24절/ 9월 9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9-09 추천 0 댓글 0 조회 537

2012년 9월 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왜 시험에 넘어졌는가?

설교 본문 : 열왕기상 13장 11-24절


11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의 아들들이 와서 이 날에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행한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하고 또 그가 왕에게 드린 말씀도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한지라/ 12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어느 길로 가더냐 하니 그의 아들들이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의 간 길을 보았음이라/ 13 그가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 그가 타고/ 14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15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6 대답하되 나는 그대와 함께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대와 함께 들어가지도 못하겠으며 내가 이 곳에서 그대와 함께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17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이르시기를 네가 거기서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며 또 네가 오던 길로 되돌아가지도 말라 하셨음이로다/ 18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19 이에 그 사람이 그와 함께 돌아가서 그의 집에서 떡을 먹으며 물을 마시니라/ 20 그들이 상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 사람을 데려온 선지자에게 임하니/ 21 그가 유다에서부터 온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외쳐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22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23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선지자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그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니라/ 24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서 있더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기사입니다. 어머니를 살해하고 시신을 수개월 동안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고등학생 지군에게 실형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최고로 키우겠다며 상상하기 힘든 학대를 하였으며, 아들은 성적을 올려도 멈추지 않는 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살해한 사건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사흘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고, 밥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며 며칠씩 굶기기도 했습니다. 아들은 성적을 이유로 어머니로부터 야구방망이와 골프채로 수백 대씩 두들겨 맞아 엉덩잇살이 울퉁불퉁해졌다고 합니다. 판사는 중학생 딸을 둔 어머니의 마음과 법관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눈물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사가 법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겪었던 것처럼 다른 각도지만 그리스도인들도 말씀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또한 말씀과 현실 사이에서 시험에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왜 시험에 걸려 넘어지는지를 깨닫고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세상 권력과 영적 싸움에서 승리

솔로몬 왕이 죽은 이후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이 되었습니다. 남 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무거운 세금 정책에 반대를 하여 애굽에 피신했던 여로보암이 돌아와서 새롭게 왕위에 올랐습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 이후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솔로몬 성전이 있는 남 유다로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붙잡는다는 명목으로 벧엘과 단에 산당을 짓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고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여 금송아지를 경배하게 하였습니다(왕상12:25-33).


하나님은 우상 숭배로 타락한 북이스라엘에 남 유다로부터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선지자는 여로보암 왕이 벧엘의 제단에서 분향을 하고 있을 때 “요시야가 태어나서 벧엘의 모든 우상을 파괴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징조로 선포했던 “제단이 갈라지고 그 위에 재가 쏟아지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여로보암 왕이 “제단에서 손을 펴며 선지자를 잡으라” 하자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내 손이 다시 성하게 하라”고 선지자에게 부탁을 하자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손이 원래대로 고침을 받은 후에 선지자를 초대하며 예물을 주겠다고 합니다. 이런 왕의 제안에 대하여 선지자는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왕과 함께 들어가지 않겠다”고 거절을 합니다. 선지자는 왕의 시험에 대하여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니다” 라고 물리쳤습니다. 선지자는 세상의 최고 권력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며 승리하였습니다(왕상13:1-10).


2. 짝퉁을 분별하지 못하고 시험에 걸려 넘어짐

세상 권력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했던 선지자는 한 늙은 선지자의 속임수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유다 선지자는 우는 사자처럼 덤비는 강한 시험은 말씀을 의지함으로 승리하였지만 광명한 천사처럼 가장한 교활한 여우의 시험에는 속아 넘어갔습니다. 그는 늙은 선지자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18절). 북이스라엘의 늙은 선지자는 진짜가 아니라 유사제품인 짝퉁으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솔로몬 시대에는 진짜 선지자처럼 활동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우상을 섬기는 여로보암 왕이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을 경배하게 하여도 보신주의로 침묵을 하였습니다. 노선지자는 하나님이 전혀 말씀하지도 않았는데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하면서 천사를 통해 말씀을 받은 것처럼 사칭하고 있습니다(18절). 북이스라엘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선지가가 있었다면 왜 남 유다에서 선지자를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였겠습니까!


왜 유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짝퉁 선지자의 시험에 걸려 넘어졌습니까?
첫째는 영적으로 방심하였습니다. 한 번의 승리에 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남 유다로 돌아올 때까지 영적인 경계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한번 찔러보고 안된다 싶으면 그냥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집요함과 끈질김이 있습니다. 권력의 힘으로 안되니까 자기편이라는 것으로 안심을 시키며 슬며시 다가와서 낚아채고 있습니다. 사탄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 올 때는 금방 구별할 수 있지만 이빨을 숨기고 내 편인 것처럼 다가와서 팔짱을 낄 때는 그만 경계를 풀어버리기가 쉬운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기도로 묻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과거에 받은 말씀은 잘 기억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를 나누지 못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기도로 묻고 공급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유다 선지자는 늙은 선지자의 속임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순간의 화살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했습니다. 셋째는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있는 동안에는 우상의 땅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떡도 물도 마시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의미는 “우상의 땅에서는 어떠한 교제도 나누지 말라”는 뜻입니다. 유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뜻을 깨닫고 삶속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빛은 세상에 비추되 세상과 혼합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선지자에게 말씀의 빛을 비추되 썩이지는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삶의 적용에 실패하자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3. 왜 속아 넘어간 선지가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은 노선지자의 집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교제를 나눈 이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노선지가가 제공한 나귀를 아무런 거절 없이 타고 있습니다(23절). 한번 무너지자 그 다음에는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습니다. 유다 선지자에게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고 하였는데 나귀까지 제공받았으니 지금으로 말하면 말씀 선포하고 근사한 대접 받은 후 좋은 승용차까지 받아서 타고 오는 것과 같습니다. 일차적인 죄악보다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이차적인 후유증이 더 심각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여기사 살짝 딜레마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속인 사람과 속은 사람 중에 어느 사람이 더 나쁜 사람입니까? 상식으로는 속인 사람이 더 나쁜 것 같은데 속은 사람이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심판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심판의 기준은 “속인 사람이냐?, 속은 사람이냐?”가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사람”이었습니다(26절). 왜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선지자는 죽어야만 했습니까? 말씀을 어긴 선지자가 죽지 않는다면 그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증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짝퉁 노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가에 대하여 시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어긴 선지자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자 오히려 죽은 선지자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잇는 모든 신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고 선포합니다(32절).


북이스라엘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선포하였지만 돌아오는 길에 시험에 걸려 죽은 유다 선지자를 보면서 사명을 완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험에 들지 아니하고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줍니다. 시골 시장 구석에서 할머니가 양파 열망을 팔고 있었습니다. 시골 시장을 구경 하던 아가씨가 할머니에게 양파 한 망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만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줄은 얼마냐고 하니 이만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세 줄은 얼마냐고 하니 삼만원라고 했습니다. 여러 망을 사도 깎아주지 않자 호기심에 열망 전부를 사면 얼마냐고 묻자 모두는 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모두를 팔지 않느냐고 물으니 지금 모든 것을 팔면 집으로 들어가야 하니 이 시장의 즐거움을 맛보는 행복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물건을 파는 것도 있지만 시장의 삶을 누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신앙의 목표나 사명을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누리는 과정이 더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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