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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한 의”/ 로마서 3장 19-26절/ 9월 23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09-23 추천 0 댓글 0 조회 723

2012년 9월 23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하나님의 한 의”

설교 본문 : 로마서 3장 19-26절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0. 들어가는 글

최근에 우리나라 사회적인 분위기는 ‘힐링’이 대세입니다. ‘힐링’의 분위기에 휩쓸리면 무작정 나도 상처가 많아 치유 받아야 될 환자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상처가 아물어 지나갔는데 다시 건드려서 아픔을 되풀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현상과 맞물려 교회도 ‘힐링’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저는 상처받은 사람은 당연히 치유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너무 심하다보면 영적인 무기력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전쟁을 치루는 군인이 몸이 긁혔다고, 가시에 찔렸다고 야전병원을 찾기 시작하면 전투는 누가합니까? 이처럼 교회에서도 작은 일에 상처받아 치유 받아야 한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영적 싸움은 누가합니까? ‘힐링’이 필요하지만 상처의 정도를 간과한 채 무분별하게 빠지면 영적인 패배주의로 몰아 갈 수도 있습니다. 상처의 아픔 속에서도 분명한 사실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치유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저 역시 상처가 많아서 상담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감사한 사실은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통하여 상처들이 이미 치유되었고, 남아있는 것들도 점점 치유되어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끊임없이 정죄하여 상처받은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가 치유 받고 회복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이 율법아래 있는지, 복음아래 있는지 깨닫고 새 출발 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율법의 역할의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은혜의 복음을 주시기 아니하고 행위의 율법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먼저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완전히 지킴으로 의로운 자들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율법을 가장 열심히 지켜서 의로워지고자 했던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라고 합니다(20절).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질 육체는 없다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합니다(20절). 율법은 99%을 지켜도 1%만 지키지 않으면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지켜서 의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다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죄인 됨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출발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라고 합니다(마9:13).


둘째는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20절).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인간들이 심판을 받아야 대상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울이 히브리서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합니다(히9:27). 우리가 죽은 이후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안다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멋대로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한 의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바울은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21절). 하나님의 한 의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한 의는 어떤 역할을 하느냐?

율법은 내가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행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은 율법을 다 지킬 수는 없지만 그러나 율법을 다 지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는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라고 합니다(22절). 하나님의 의가 행하는 자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미친다고 합니다. 율법아래 있는지 은혜아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다음 질문을 통해 상태를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도움을 받으러 왔습니까? 아니면 구원을 받으러 왔습니까? 도움을 받는 것과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도움을 받는 것은 아직 우리의 힘이 남아 있는 상태이고,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도움을 받고자하면 아직 내 힘으로 살고자하는 율법적인 행위가 남아있는 것이고, 우리가 전혀 힘이 없는 상태를 인정하면 은혜로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에 비해 떨어지는 사람을 자신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여 몸매가 팔등신으로 너무 잘빠진 아가씨를 입맛이 당겨서 즐겁게 먹고 사는 아줌마와 동일하게 취급하면 아마도 무지 열 받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죄를 적게 지은 사람이나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을 차별 없이 동일하게 취급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합니다(22절). 이런 예수님의 태도에 유대인들이 무지 열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하여 이방인들과 차별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차별을 두는 사람은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요즈음 세상의 마케팅 전략은 차별화입니다. 차별화를 통하여 VIP 고객들을 유치하려 합니다. 이런 세상의 마케팅 전략이 교회까지 들어와 자신들의 교회가 특별한 교회라고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그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VIP 교인인줄 압니다. 또한 같은 교회 다니면서 은연중 자신은 다른 교인들과 다르게 특별한 교인이라고 차별화를 시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혀 주님이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와 교인들입니다. 주님의 확실한 말씀은 하나님의 한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차별 없는 은혜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3. 하나님의 의로 의로워진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가 차별이 없듯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도 차별이 없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합니다(23절). 여기서 죄가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합니다(24절). 여기서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선언은 법정용어로서 재판장의 판결이 형을 확정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재판장이 무죄를 판결하면 죄없는 사람이 되어 풀려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의롭다 판결하면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죄를 선고 받으면 죄는 없어지지만 그 사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의롭다 선언 받으면 용서받은 의인이 되지만 성품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성품을 형성하는 것에 대하여 여러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다윈은 생물학적 결정론을 주장합니다. 부모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것이 성격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프로이드는 심리적 결정론을 주장합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격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결정론을 주장합니다. 환경이나 주변의 여건이 성격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어떤 성품을 가졌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합니다(고후5:17). 의롭다 선언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후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시 자신들의 행위로 살아가는 율법적인 삶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로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주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선언하였지만 그 효력은 주님과 함께 할 때만 나타나는 것입니다(26절).


물 잔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질 때 파동과 함께 변화가 일어납니다. 모든 물질은 저마다 고유한 파동이 있습니다. 사람도 저마다 다른 특유의 파동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나면 갑자기 방안이 싸늘해지는 분위기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나타나면 온 방안이 훈훈해지는 분위기가 되기도 합니다. 율법은 자신의 행위로 인한 파동을 일으키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은혜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파동을 일으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율법이 아닌 은혜로 구원받았다면 예수님과 함께하는 파동을 어떻게 나타내며 사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파동들이 우리들이 삶속에 나타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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