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30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세상보다 더 강한 믿음
설교 본문 : 출애굽기 1장 15-22절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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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석명절입니다. 주일과 추석 당일이 겹친 적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인 것 같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고향에 방문하였습니다. 흩어져 있었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고향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참으로 귀한 시간이라 여겨집니다. 불신 가정에서 태어난 저에게는 명절이 믿음을 지키기 위한 영적 싸움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명절이 되면은 더 담대한 믿음들이 필요했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세상에 끌려가는 믿음이 아니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믿음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은 애굽에서 요셉을 알지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렸습니다(8절). 애굽으로 이주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려워한 바로는 전쟁이 일어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들과 합하여 애굽과 싸울 수 있다는 구실을 내세워 학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10절). 바로의 학대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번성하자 아들은 죽이고 딸은 살려두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16절). 당시에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애굽이었습니다. 애굽 왕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애굽 왕의 명령을 거절하여 죽을지라도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고 합니다(17절). 눈에 보이는 세상의 가장 강한 왕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또한 생명을 죽이는 세상의 법과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법 사이에서 어느 법을 따라야 할지는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청년 요셉이 애굽의 군대장관의 아내였던 보디발의 유혹을 어떻게 이깁니까? 지금 눈앞에서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는 종이었던 요셉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여 죄를 범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합니다(마10:28). 우리들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바르게 아는 것이 참된 믿음의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히브리 산파들이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여 남자 아기들을 살린 것에 대하여 바로에게 추궁을 받습니다. 오늘 분문에서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고 합니다(18절). 바로 앞에서 히브리 산파들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혜로운 답변을 주십니다. 히브리 산파가 바로에게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고 합니다(19절).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이 핍박을 당할 때에 성령님은 그들에게 지혜로운 말을 주십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고 합니다(막13:11).
지금 한국사회는 자기개발의 열풍이 불고 있는데 그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를 개발해서 스펙을 쌓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개발이라는 서적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고 있으며, 자기를 개발하겠다고 학원에는 수강생들이 붐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성공하고 싶다는 다양한 욕구에 매달려 주변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앞으로만 내달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억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분주한 세상에서 무엇을 얻기 위하여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습니까? 명절에 한번쯤은 멈추어서 진정 의미있는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매 순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한걸음씩 나아가는 삶이 가장 복이 있는 삶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이 은혜를 주심
하나님은 세상의 왕보다 자신을 더 두려워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고 합니다(20절). 우리는 히브리 산파들이 받은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 묵상을 해보아야 합니다. 히브리 산파들의 은혜는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주변을 잘되게 하는 은혜였습니다. 그 증거로 20절 후반부에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고 합니다. 히브리 산파들이 받은 은혜가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그 은혜가 자기만족에 갇혀있는 느낌이 되어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있다면 그 은혜로 주변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지난주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눈 내리는 추운 겨울밤에 한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기차가 왔고 그가 기차에 오르려고 할 때 초라한 모습의 할머니가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할머니는 얼마나 굶었는지 모른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한순간 망설임도 없이 기차 차비로 가지고 있던 돈을 할머니에게 건네주고,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는 왜 그래야 했을까? 겨울밤 눈보라 속을 걸어가야 할 대가가 얼마나 혹독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행위가 할머니를 도와주지 않았을 때 겪어야 할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자기만족이었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우리들이 하는 신앙의 행위가 자기만족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저에게도 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싫어서 그 마음을 없애기 위한 자기만족적인 신앙의 행위들이 많았음을 회개합니다. 참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만족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행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이웃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집안이 흥왕케 하심
히브리 산파들이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좋은 환경과 여건에서 경외한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인 것입니다. 히브리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속에는 무엇이 담겨져 있을까요? 첫 번째로 세상의 법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더 귀하게 여기고 따르는 경외함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이 어떤 고난으로 우리를 위협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세상의 임시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위협과 고통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잠시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은 영원한 것입니다. 세상에 잠시 지나가는 것에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에 굴복하는 것이 진정한 경외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케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고 합니다(22절). 흥왕케 되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흥왕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조지 도우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을 경외할 때 하나님이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누구인지 알면 그분께 즉시 전적으로 기쁘게 순종할 것이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적이 흥왕케 하는데 있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흥왕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흥왕께 되는 일에 조금이나마 더 관심이 있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자기만족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 명절을 보내면서 온 가족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며, 은혜를 받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할 수 있는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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