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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이유?/ 신명기 8장 1-6절/ 10월 21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10-22 추천 0 댓글 0 조회 828

201년 10월 2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이유?

설교 본문 : 신명기 8장 1-6절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0. 들어가는 글

지난주 총회에서 2013년도 달력 샘플과 주문서가 왔습니다. 13년도 달력을 보면서 “정말 세월이 빠르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빠른 세월을 움직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속도입니다. 속도 경쟁이 세월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속도가 빨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고속도로에 있는 단속 카메라를 첨단장비로 따돌리면서까지 빨리가기 위해 애쓰는 세상입니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규정을 위반해도 상관없는 것입니다. 규정보다 속도가 우선이 되는 세상 분위기가 성공만 하면 규정을 어겼더라도 박수를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의 속도 분위기에 편승하는 모임 중의 하나가 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규정보다도 속도를 더 중하게 여기는 분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살펴 볼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이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이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합니다(2절).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기간은 약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하나님은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길을 40년이 걸려서 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광야를 걷게 하신 것에 대해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단축하는 속도를 택하지 아니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손으로 그들을 빚으시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생산능률적인 입장에서 보면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비효율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빚으시고 싶어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2절).


하나님이 오랜 시간동안 빚으시고자 했던 첫 번째 이유는 우리를 겸손히 낮추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시간과 겸손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간을 움직이고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공상과학영화에서는 과거나 미래로의 시간 이동을 통하여 인생을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이고자 합니다. 그만큼 인간이 시간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이 시간을 지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시작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오랜 시간 동안 빚으시는 두 번째 이유는 우리를 시험하사 우리 마음이 어떠한지의 알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시험은 올무에 빠뜨리기 위한 악의적인 유혹이 아니라 더 큰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선의의 테스트를 의미합니다. 이어서 “네 마음이 어떠한지”는 인간은 극한 상황에 빠지게 되면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입니다. 주님을 모르는 자는 세상의 고난 앞에서 어리석은 허세를 부리거나 쉽게 좌절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난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도의 빠름보다는 더디게 갈지라도 바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 하든 다른 교회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빠르다는 유혹이 바른 말씀을 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빠르게만 교회가 성장하면 바르게 했는지는 전혀 묻지 않고 기적을 일으킨 부흥이라고 합니다. 또한 빠른 성공을 통해 많은 헌금을 하면 바르게 하는 것은 상관없이 성공했다고 박수쳐줍니다. 속도가 경쟁력인 세상에서 바르게 하기 위해 늦어지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 취급받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눈으로 바라보실까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빠르게 성공하는 것보다 오히려 바르게 하는 실패를 더 가치 있게 여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사십년 걸려서 가게 한 것은 우리에게 빠른 것보다 바른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2. 하나님 만나를 먹이신 이유?

빠름이 아니라 바름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이신 양식은 무엇이었습니까? 광야 40년 동안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리시는 만나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먹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3절).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시고 주리셨습니다(마4:2).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였습니다(마43).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받을 때 오직 말씀으로 승리하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연약한 인간들이 영적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들도 “백 투더 바이블”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제일먼저 말씀에서 벗어났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이 희미해지면 인생의 위기가 닥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중에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사사기 시대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이 사라지다보니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삿17:6). 인생의 위기가 닥칠 때 자신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따라가야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진정 말씀을 따르는지 알기 위하여 우리를 낮추실 뿐만 아니라 주리게도 하십니다(3절). 우리들이 진정 무엇에 굶주려 있는지를 알기 위함이십니다. 무엇에 굶주려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믿는 자는 말씀에 굶주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에 굶주림은 없이 자신의 욕망에만 굶주려 있다면 어찌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마7:21). 우리들은 지금 무엇에 굶주려 있습니까? 진정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려 있습니까? 우리 안에 말씀을 향한 굶주림이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는데서 부터 진정 바른 믿음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이유?

하나님이 우리를 빚으시는 방법은 보호와 징계입니다. 주님이 빚으시는 보호와 징계의 손길을 모두 다 경험할 때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하심만을 바라본다면 철없는 신앙이 되기가 쉽고, 또한 하나님의 징계만 바라본다면 무서워서 바라볼 수 없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 동안 걷게 하셨지만 무책임하게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보호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4절). 백성들의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소와 양을 충분히 몰고 나와서 만들어 입었기 때문에 광야에서 40년 동안 떨어진 옷을 입은 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다’는 것도 신발을 제때에 공급되어 발이 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한번 입은 의복이나 신발을 끝까지 사용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소와 양을 통하여 옷과 신발을 공급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하심에 대하여 두 가지 면을 보여줍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먹이심으로 초자연적인 보호하심과 소와 양을 통하여 의복과 신발을 공급하는 자연적인 보호하심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영적인 보호하심과 생활의 보호하심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보호하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징계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라”고 합니다(5절). 주님이 우리를 징계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친밀한 사랑의 관계임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친밀한 사랑의 징계에 대해 목자와 양의 관계를 통해 은혜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목자들이 양들을 돌볼 때 항상 지팡이를 가지고 다닙니다. 그리고 양들이 심하게 고집을 부리는 목자는 지팡이로 양의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합니다. 평소에 순한 양 같지만 화가 나서 고집을 부리면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만일 고집 부리는 양의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내버려 두면 목자의 눈을 벗어난 순간 맹수의 밥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고집부리는 양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눈에서 벗어나기 전에 먼저 다리를 부러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목자가 부러진 양의 다리를 친히 싸매고 목에 들쳐 매고 오는 동안 징계 받은 양은 목자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로 징계를 받은 양은 다시 고집 부리지 아니하고 목자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각자의 고집대로 살아가는 인생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 징계하는 것입니다. 그 징계가 주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말씀으로 인생의 굶주림을 채우고 믿음의 바른 길로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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