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4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누구 위대한 일을 행했는가?
설교본문 : 다니엘 6장 10-23절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왕의 도장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는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확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못하는 규례니라 하는지라/ 13 그들이 왕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다니엘이 왕과 왕의 도장이 찍힌 금령을 존중하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하니/ 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 15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께서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고치지 못할 것이니이다 하니/ 16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1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0. 들어가는 글
11월 첫 주인데 갑작스럽게 초겨울이 다가온 느낌입니다. 제법 추운 날씨가 우리의 몸을 움츠려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음 주면 이사를 갑니다. 날씨까지 추워지다 보니 고민도 더 많아집니다. 한 달 이상을 임시로 준비가 덜 된 공사 중인 건물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성경을 통독하다가 다니엘이 삼십일 동안 시험받은 이야기를 오늘 분문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7절). 다니엘이 받은 삼십일의 시험과 우리 교회가 임시로 지내야 하는 삼십일의 기간을 연결 지어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삼십일 동안 제가 어떻게 하자고 제시하는 것보다 다니엘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삽 십일 동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니엘이 친구들과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뜻을 정하여” 하나님을 섬김으로 총리까지 되었습니다. 그가 총리로서 마음이 민첩하여 다른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이에 고관들이 다니엘을 고발하고자 뒷조사를 하였지만 그가 충성되어 어떤 그릇됨과 허물도 찾지 못하였습니다(4절). 이에 고관들은 다니엘을 고발하기 위하여 종교적인 문제를 걸고 넘어졌습니다.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입니다(7절). 겉으로는 다니엘을 죽이고자 하는 핍박이었지만 안으로는 그의 믿음을 흔들어보는 시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삼십일 동안”만 잘 피해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삼십일 동안 발견되지 않고 숨어서 기도하든지, 잠시 중단하였다가 다시 하면 모든 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삼십 일 동안의 시험이 다가왔습니다. 건축 공사 기간 동안 잦은 비로 인하여 준공이 되기 전에 이사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모든 것이 불편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보는 시험입니다. 우리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삼십일 동안을 어떻게 하였습니까? 첫째는 모든 사실을 “알고도” 기도하였습니다(10절). 그는 사자 굴에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총리로서 복을 받고 성공하는 믿음만 추구했던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었던 믿음을 가졌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위로만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낮아져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삼십 일만 피하면 되는 것을 “전에 하던 대로”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변의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반석위에 세워진 믿음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주변의 상황 때문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가 “전에 하던 대로”하는 것은 위선이나 가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핍박 때문에 전에 하던 것을 하지 않으면 위선이 되고 가식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위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하던 대로” 계속 기도했다는 것은 요동함 없이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셋째는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다는 것은 거룩한 습관이 삶의 체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가장 파워가 있을 때는 믿음이 삶으로 나타 날 때라고 합니다. 무슬림이 무서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이 모여 사는 곳에 무서운 신앙의 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도 말씀대로 사는 것이 삶의 체질이 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한 달 동안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지만 전에 하던 대로 요동함 없이 주님만 바라보고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을 향하여 창문이 열려있는 믿음
여기서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가 참으로 중요합니다(10절). 그가 창문을 닫았으면 기도하는 모습을 감출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창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이 외부의 고난과 핍박 때문에 주님을 향한 기도의 창문을 닫는다면 결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다니엘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창문이 열려 있습니까? 주님을 향한 기도의 창문이 닫혀 있다면 영적인 무기력의 곰팡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이 살아 있지 못하고 질식하여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이 없는 고관들은 금령에 도장을 찍어다는 법을 들이대면서 고칠 수 없으니 사형을 집행하라고 합니다(12절). 하나님을 향한 창문이 닫혀 있는 곳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들을 만들어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창문이 열려 있는 곳은 오히려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생명이 역사하는 교회는 영혼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다하지만 법만을 따지는 교회는 갈등과 분열 속에서 세상 법정의 판결을 기다리는 부끄러움을 행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역사하는 교회는 항상 주님을 향한 기도의 창문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교회 건물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놓고 관리를 한답시고 문이 잠겨있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교회들은 건물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누구든지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창문을 열고 주님께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합니다(10절). 그는 어떤 조건이 있어서 감사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복을 받고 성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죽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항에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잘되어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어려울 때도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면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미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감사의 창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일순간에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진짜 큰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감사의 창문을 열어놓고 닫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무엇이 최고의 감사인지를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한신교회가 어렵고 힘든 삼십 일을 보내지만 주님의 최고의 사랑을 알고 오히려 감사가 더 넘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 누구 위대한 일을 행하셨습니까?
기복적인 신앙은 다니엘처럼 기도하면 복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핍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했기 때문에 사자 굴에 들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우리가 결과를 알고 있어서 그렇지 과정을 보면 참으로 무심한 하나님입니다. 다니엘이 결국 사형 집행을 받아서 사자 굴에까지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은 다니엘이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초점이 다니엘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하심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더 크게 증거 하기 위하여 사자 굴에 들어간 것입니다. 사실 “다니엘이 사느냐?, 죽느냐?”보다 더 큰 관심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다리오 왕도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어떻게 하실까?”가 밤새 궁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른 새벽에 직접 찾아가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고 묻고 있습니다(20절). 다니엘이 믿었던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봉하셨습니다(23절). 하나님을 믿었던 다니엘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사자의 입을 봉하여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믿음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더 찬양하며 영광 돌려야 합니다.
저는 지난주 모라비아 교도들의 선교에 대해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카리브 해 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두 사람이 스스로 노예가 된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을 텐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는 모라비아 교도들의 믿음과 자신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현대인들의 믿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치가 그 두 형제들로 하여금 목숨을 내놓고 세상으로 나가 복음의 증인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가치가 더 큰 사람은 주님 때문에 희생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도 하나님의 가치가 더 크고 위대했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였던 대제국의 총리까지 포기하고 사자 굴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라비아 교도나 다니엘이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희생하게 만들었던 주님의 사랑의 가치가 위대한 것입니다. 부디 우리 인생에 주님의 사랑의 가치가 최고가 되어 복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삶이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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