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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과 함께 들어감/ 마태복음 25장 1-13절/ 신랑과 함께 들어감
조영식 2012-11-25 추천 0 댓글 0 조회 358

2012년 11월 25일 주일 설교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5장 1-13절

설교 제목 : 신랑과 함께 들어감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0. 들어가는 글

11월 마지막 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주 검사들의 연이은 비리들을 보면서 ‘무엇이 되느냐?’ 보다도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유대의 혼인잔치에는 신부가 자신의 친한 친구 10명을 들러리로 세우는 풍습이 있습니다.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랑을 맞으러 나가서 신부에게 데려오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은 신랑을 맞으러 나간 들러리 10명을 통하여 천국 비유를 설명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신부의 들러리들이 등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1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들러리들은 기다리다가 지쳐서 졸며 잠이 들었습니다(5절). 밤이 깊어 가는데 잠결에 신랑이 오므로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6절). 들러리들이 등을 준비하여 나아갈 때 열 명중 다섯 명에게 기름이 부족한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8절). 열 처녀 비유를 통해 등잔을 신앙의 겉모습으로 기름을 내용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내용을 채우는 중요성에 대해 강조합니다. 저는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너무 틀에 박힌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떤 틀에 갇혀서는 안됩니다. 그 안에서는 진리가 자유롭게 역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열 처녀 비유를 통하여 우리들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첫 번째 문제는 “신랑이 더디 오므로”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신부의 들러리들에게 등잔의 기름이 부족한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생겼습니까? 기다렸던 신랑이 더디 오므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5절). 신랑이 오는 것에 대해 일반적인 예상보다 더 늦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지만 안했어도 기름이 부족한 문제는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랑이 언제쯤 오리라 예측했던 들러리들의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처녀들의 예측하는 태도가 두 부류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예측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예측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자신들의 예측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처녀들은 미련한 자가 되었습니다(3절). 그러나 자신들의 예측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은 슬기로운 자가 되었습니다(4절).


우리는 모든 일들이 예측대로 되지 않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지 못하기에 미련한 자가 됩니다. 슬기로운 자는 자신의 예측을 겸손히 내려놓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주님은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합니다(13절). 우리들이 주님이 오시는 때를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며 알 수가 없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대로 예측하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2. 두 번째 문제는 “등불이 꺼져가니”에서 생겨납니다.

자신들의 예측을 확신했던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신랑이 더디 옴으로 기름이 부족하여 등불이 꺼져갔습니다(8절). 여기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기름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등불이 꺼져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름을 신앙의 내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어떤 등불이든지 꺼지지 않는 등불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꺼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신앙도 꺼지지 않는 믿음이 없습니다. 신앙도 꺼지지 않도록 믿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처음에는 뜨겁게 타올랐다가 얼마 안가서 쉽게 꺼져버리는 신앙들을 많이 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등잔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다 등잔에 기름이 있었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다른) 그릇에 기름을 (추가로) 담아”갔던 것입니다(4절).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에 기름을 계속 공급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계속 타오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영적인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전투를 하였습니다. 모세가 두 손을 들고 기도를 하면 여호수아가 이겼지만 기도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출17:11). 아론과 홀이 모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잡아줄 때 여호수아는 전투에서 완전히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전투가 타고 있는 등불처럼 앞에서 사역하는 것이라면 뒤에서 기도하는 모세의 손이 지속적으로 영적인 공급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과 영적인 공급이 균형 잡힐 때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름이 떨어진 처녀들이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처녀들에게 “너희 기름 좀 나눠 달라”고 합니다(8절).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와 너희가 다 쓰기에 부족할까 하노라”고 거절을 합니다(9절). 슬기로운 처녀들이 참 야박하고 사랑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님이 주시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미련한 처녀들에게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합니다(9절). 믿음 생활만큼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각자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기름을 나눌 수 없다고 하면서 “너희 쓸 것을 사라”는 것은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선물로 주시지만 구원 받은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3. 세 번째 문제는 “알지 못하노라”의 판결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들은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10절). 신랑이 오기 전에는 서로 간에 차이가 없었지만 신랑이 온 이후에는 혼인 잔치에 들어간 자들과 문 밖에 남겨진 자들로 나누어졌습니다. 우리들은 문밖에 남겨진 자들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문밖에 남겨진 자들에 대한 충격적인 사실은 주님이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한 것입니다(12절). 주님이 우리를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했느냐?, 하지 못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신랑과 함께했던 자들은 혼인잔치에 들어갔지만 함께하지 못했던 자들은 문밖에 남겨졌습니다(10절). 천국은 우리들의 능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해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했느냐?, 하지 못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신랑과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 갈 때는 “준비하였던 자들”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10절). 그러나 신랑의 오심을 준비하지 못했던 자들은 알지 못하는 자들로 문 밖에 남겨졌습니다.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는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준비에서 나누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무엇을 준비하며 사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의 세상이 고령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주님이 오시는 때를 놓쳤느냐?, 놓치지 않았느냐?”의 차이입니다. 준비하였던 자들은 때를 놓치지 아니하고 주님을 맞이하였지만 준비의 때를 놓친 자들은 “사러 간 사이”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때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을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준비의 때를 놓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앙의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신부의 들러리를 세운 목적은 신랑이 올 때에 등불을 들고 나가서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기름은 신랑을 맞이하도록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구하다가 문이 닫혔습니다. 오늘 예배시간에 우리들이 드리는 모든 것은 주님을 맞이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모든 예배 가운데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맞이하는 도구를 주님보다도 더 중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난주 제자훈련을 하면서 저의 가슴을 찌른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합니다(엡5:16). 제자훈련 교재에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이 “돈을 주고 기회를 사라”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이 해석은 시간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라”는 것으로 재해석 할 수 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지도 못하고 때를 놓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하여 신랑의 오심을 준비함으로 때를 놓치지 않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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