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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아우?, 아벨의 형?/ 창세기 4장 1-15절/ 12월 2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2-12-02 추천 0 댓글 0 조회 334

2012년 12월 2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가인의 아우?, 아벨의 형?

설교 본문 : 창세기 4장 1-15절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0. 들어가는 글

12월 첫째 주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절 기간에 국가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교회적으로는 건축이 순조롭게 완공되어 입당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창세기에서 가인과 아벨의 형제 갈등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가 파괴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과 이웃의 관계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깨닫고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인생이 역전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아더라”고 합니다(창1:31). 그러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세상은 죄가 들어옴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어 갔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외형적으로 가인과 아벨의 모습은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들은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형제이며, 땅을 경작하는 사람과 양을 치는 사람으로서 상호 보안적인 직업에 종사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똑같이 하나님께 땅의 소산과 양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심지어 2-5절에서 가인과 아벨의 이름을 네 차례나 교대로 사용하면서 보시기에 좋은 관계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좋아보였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미 죄로 인하여 무서운 불공평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와는 맏아들 가인이 태어났을 때 기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외쳤습니다(1절). 그 기쁜 마음을 담아 ‘생산하다’는 뜻으로 명예로움이 담긴 가인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둘째의 탄생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그에게는 무가치하고 열등한 존재라는 아벨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또한 두 사람의 직업은 상호 보완적이었지만 가인은 큰 땅을 가진 부유한 농부였고, 아벨은 얼마 되지 않는 양떼를 먹일 정도의 작고 척박한 땅을 가진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죄의 결과 때문에 태어난 순서로 서열이 생겨나고, 남녀 성별로 차별이 생겨나고, 물질의 소유로 빈부 차이가 생겨나고, 직업의 종류로 귀천이 생겨났습니다.


세상에 죄가 들어옴으로 생겨난 형제 사이의 불공평을 해결 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두 사람이 모두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져왔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부유했던 가인의 제물이 아니라 가난에서 하나님을 절실히 의지했던 아벨의 제물을 존중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가인이 장자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벨이 영적인 장자로 세워졌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가치가 효력을 잃고, 모든 차별이 사라짐을 보여줍니다. 또한 세상의 불공평이 하나님의 공평으로 새롭게 재창조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유하려는 것은 욕심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오직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세상은 조건에 따라서 불공평하고 차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을 보시고 공평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2. 가인의 아우 아벨은 있었지만 아벨의 형 가인은 없었다.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이 제물을 드릴 때 세상에 있던 조건을 보지 않고 오직 그들의 중심을 보고 받으셨습니다. 제물을 드린 후에 가인은 하나님께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가인은 세상에서 자신이 장자이듯이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이 당연히 장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조건으로 별 볼일 없는 아벨이 인정받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관계는 항상 형인 가인 중심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인의 아우 아벨”은 나오지만 “아벨의 형 가인”은 나오지 않습니다. 가인의 중심으로만 아벨을 바라본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가인은 아벨과 비교하여 항상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동생을 인정하였을 때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습니다(5절). 가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바꿀 수 없음을 알았을 때 분노의 감정으로 하나님과 아벨까지도 배제시켰습니다.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전혀 포용하지 못하고 배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으로 배제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됩니까?
첫째로 하나님과 자신까지 속이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이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가인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나님과 자신까지도 속이고 있습니다(9절).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잘못되었고, 죄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바울도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율법을 가장 잘 지키는 자며, 의인중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뜻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못되었기에 철저히 배제시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깨어지게 되자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였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리는 자치하면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인은 형의 자리는 지키면서 아우에 대해 조금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가 아니므로 아우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할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9절).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어떤 문제 앞에서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책임을 회피 합니다. 지금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도 서로들 자리는 차지하려고 힘쓰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회피하는 모습에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합니다(12절). 가인은 하나님과 이웃을 포용하지 못하고 배재시킴으로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모르는 삶은 열매가 없는 무익한 삶을 살게 됩니다(12절). 우리가 자기중심에 많이 벗어나면 날수록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있는 영역은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3. 죄의 명령이 말씀의 명령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인이 실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미리 경고합니다(7절). 그러나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에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죄가 원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에 말씀의 영향력보다 죄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범죄 이전에 가인은 죄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었고. 죄라고 불리는 포식자를 다스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를 못하고 오히려 죄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살인을 범했습니다. 우리가 죄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다면 잘 다스릴 수 있는 분에게 맡겨야 합니다. 운전을 잘하지 못하면 운전을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함께 타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서 핸들 잡고 주인 노릇하고 있으면 사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우리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더 잘 알고, 우리를 더 잘 인도할 수 있는 주님께 인생의 핸들을 맡겨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가인을 죽이려고 해서 “하나님이 그의 이마에 표를 주었느냐?”입니다(15절). 하나님이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의도와 그 말씀을 듣는 대상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인은 죄의 결과로 죽음의 위협을 느꼈습니다(14절). 하나님은 잠재적인 희생자가 된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표를 주었습니다. 가인이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배제의 삶을 시작하였지만 또 누군가에 의해서 배제의 삶이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배제의 악순환을 끓기 위해 포용의 삶을 친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배제를 못 박고 포용의 길을 여셨습니다.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세상의 불공평이 믿음 안에서 역전되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 보좌의 자기중심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부디 대림절 기간 동안 자기중심을 깨뜨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더 닮아갈 수 있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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