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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반응들.../ 마태복음 2: 1-11절/ 12월 25일 성탄절 주일 설교
조영식 2012-12-25 추천 0 댓글 0 조회 398

2012년 12월 25일 성탄절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성탄의 반응들...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 1-11절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0. 들어가는 글

겨울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추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아기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에 담겨져 있습니다. 영원 속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시간 속으로 들어온 날입니다. 그리고 영원과 시간을 연결하시는 유일한 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영원 속에서 역사 속으로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계절의 추위뿐만 아니라 인생의 추위까지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역사 속으로 찾아온 예수님에 대하여 인간들은 다양한 반응들을 보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인간들이 어떤 반응들을 보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며 살아가는지 돌아볼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의 탄생을 칼로 맞이하는 반응.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자는 왕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을 지닌 왕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예수님이 태어난 지역에서 최고의 권력자는 헤롯왕이었습니다. 헤롯은 이두매 출신으로 유대 지역을 통치할 수 있었던 최고의 수완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이처럼 수완이 좋았던 헤롯왕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요? 헤롯왕은 동방박사들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2절). 동방박사들이 경배를 한답시고 유대인의 왕을 찾고 있었습니다. 현재 자신이 유대인의 왕인데 자기도 모르는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엄청난 긴장감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수완이 좋았던 헤롯왕은 자신의 속마음을 감춘 채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부탁을 하면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합니다(8절). 너무나 속보이는 헤롯의 속임수였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아기 예수를 죽이고자 베들레헴에 태어난 두 살 미만의 유아들을 살해한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16절).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생명을 죽이는 세상의 왕과 자신의 죽이면서까지 생명을 살리시는 하늘의 왕이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금도 두 부류의 인생이 있습니다. 먼저는 헤롯왕처럼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부류입니다. 이런 부류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며 살아갑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돕는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부류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변화되지 못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종교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부류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류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입니다. 주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이 고난의 길인 이유는 자신을 포기하며 희생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남아공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이전에 왼쪽다리가 없는 주인 밑에서 살던 프리덤이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 주인은 새 신발을 살 때마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왼쪽 신발을 프리덤에게 '인심'을 베푼 척하며 선물했습니다. 얼마 후 프리덤은 왼쪽 신발이 두 개가 되자 하나를 오른발에 신고 다녔습니다. 그 결과 오른발이 조금씩 틀어져 갔습니다. 부디 헤롯왕처럼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인생이 아닌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소문으로 맞이하는 반응.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을 인도하는 별이 잠시사라지자 예루살렘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태어난 장소를 수소문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소문을 통해서 헤롯 왕 뿐만 아니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다”고 합니다(3절).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번져가면서 시끌벅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어떤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저 한 때 소동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 어디인지 몰라서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소문까지도 번졌을 것입니다(5절). 그러나 잠시 관심은 가졌지만 그냥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도 지금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냄비 근성이 있었나 봅니다. 사실 우리 국민들의 냄비 근성도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냄비 신앙이 된다면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잠시 뜨거워졌다가 금새 식어버리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 신앙입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냄비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기적을 일으키면 춤을 추면서 환호했지만 조금만 길이 힘들어도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무언가를 응답해주시면 뜨거워지지만 조금만 힘들어지면 시들해지는 신앙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냄비 신앙이 아니라 길게 갈 수 있는 뚝배기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냄비 신앙과 뚝배기 신앙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 차이는 말씀의 뿌리가 얼마나 깊으냐에 달려있습니다. 말씀의 뿌리가 깊은 신앙일수록 주변의 소문들에 쉽게 요동치지 않습니다. 이사야는 뚝배기 신앙에 대하여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합니다(사26:3). 뿌리가 깊다보니 외부의 바람들에 영향을 덜 받아서 평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소문에 흔들리는 냄비 신앙이 아니라 뿌리가 깊은 뚝배기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3. 예수님의 탄생을 종교 지식과 경배로 맞이하는 반응.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을 찾기 위해 방문했을 때 당황하여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라고 물었습니다(4절). 당시의 종교인들은 그리스도가 태어날 장소가 “유대 땅 베들레헴” 이라는 것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6절). 종교인들은 구약 성경 미가서 5장 2절까지 구체적으로 인용하며 메시야 탄생에 대하여 헤롯에게 답변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경 지식적으로 완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경 지식이 전혀 행하는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성경을 통하여 예언된 메시야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습니까! 예수님이 태어난 장소가 어디인줄 알았다면 그들을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신속하게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종교인들에 죄인 취급을 받았던 들판의 목동들이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메시야가 태어난 장소로 달려갔습니다. 현대 교회 교인들은 초대 교회 교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경 지식이 해박합니다. 초대 교인들은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없었지만 말씀을 들으면 그대로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인들은 누구나 성격을 직접 읽을 수도 있고 얼마든지 말씀을 들을 수도 있지만 아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의 지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을 때 이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헤롯왕은 예수님을 탄생을 칼로 맞이하고자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소문으로 맞이하고자 하였습니다. 종교인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신앙의 지식으로 맞이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들과 다르게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하였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이 보배합을 열어 드린 황금과 유황과 몰약이라는 예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예물보다도 그들이 드린 더 중요한 예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방박사들이 자신들의 몸을 친히 예수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당시의 관습을 보면은 그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대리자를 보내서 예물을 전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친히 사막을 지나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죽을 고비를 넘어가며 마침내 예수님께 찾아와서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물을 드리면서 기쁨을 누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찾는 과정 속에서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는 최고의 기쁨을 누렸습니다(10절). 동방 박사들은 자신들을 희생하며 예수님을 찾아오는 과정자체가 최고의 예물이 된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단지 죽었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이 있었기에 사랑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이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찾아가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일 때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으며, 길게 가는 뚝배기 신앙이 될 수 있으며, 행하는 믿음으로 세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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