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3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믿음과 고민 사이에서
설교 본문 : 창세기 15장 1-17절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0. 들어가는 글
새해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은 겨울 추위가 조금은 누그러진 느낌입니다. 청년시절에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의 고민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신앙의 고민들을 믿음이 있어 보이는 분들에게 말하면 무조건 잘 믿으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답변들에 답답함이 밀려오기만 하였습니다. 저처럼 신앙의 고민을 말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신앙의 고민만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고민들을 속에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할 수 있다면 더 건강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에 대해 고민이 없는 사람은 맹목적인 믿음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이 믿음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다고 하면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신앙의 고민을 충분히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믿음과 고민은 대립의 개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처럼 신앙의 고민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때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어떤 고민들을 통해 성숙해졌는지 묵상하며 적용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자녀의 출산에 대한 고민?
아브라함의 첫 번째 고민은 자식이 없는 문제였습니다(2절). 그냥 자식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식을 주겠다고 두 번씩이나 친히 약속을 하셨는데 없는 것입니다. 제일 처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는 약속을 하셨습니다(창12:2). 두 번째로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헤어졌을 때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라고 약속하였습니다(창13:16). 얼마나 대단한 약속입니까! 그러나 현실은 무자하였습니다. 그는 심각한 고민 속에서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라고 따지듯이 묻고 있습니다(2절). 그는 하나님의 약속과 현실 속에서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에게 자신의 방법을 제안합니다. 그는 당시에 고대 근동의 관습대로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라고 합니다(3절). 하나님도 그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자신의 방법을 제안 합니다(4절).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합니다(5절).
아브라함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로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보시고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6절). 신앙생활하면서 말씀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고, 자신의 방법을 제안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을 수용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과 자신의 방법이 대립할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을 때 믿음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방법대로 이루어 달라고 밀어붙이는 것이 대단한 믿음인 냥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방법은 이기적인 중력의 법칙이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이타적인 은혜의 법칙입니다. 믿음의 의는 중력의 법칙에서 은혜의 법칙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하늘의 뭇별과 씨 하나 없는 현실은 간격이 큽니다. 어찌보면 그의 자손에 대한 약속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처럼 보여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이 생명의 씨 하나에서부터 시작됨을 교훈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씨 하나를 통해 하늘의 뭇별과 같은 믿음의 후손들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대단하게 시작하시지도 않았고 단시일 내에 엄청난 결과를 성취하시지도 않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믿음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새해에 성도님들도 생명의 씨 하나를 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땅의 소유에 대한 고민?
아브라함은 또 다른 신앙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가 풀렸다고 다른 것도 풀린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 고민은 땅을 소유하는 문제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해서 그 먼 길을 이동에서 온 것입니다(창12:1).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그가 롯과 헤어졌을 때도 하나님은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합니다(창13:14,15).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땅 한 평 주지 않았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아브라함은 또 다시 풀리지 않는 고민에 대해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합니다(8절). 그는 첫 번째 고민에서 두 번째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반복되는 고민을 보면 믿음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 번째 고민에서는 자신의 방법을 제안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믿음이 성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고민에 대해 언제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맺자고 합니다(9절 이후). 하나님이 그에게 언약을 제안하시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바라보며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살아생전 땅 한 평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라가 죽었을 때 그녀의 매장지로 막벨라 굴을 매입하였습니다(창23:9). 그리고 자신이 죽었을 때도 막벨라 굴에 묻혔습니다. 그는 살았을 때 하나님의 언약만 믿고 살다가 죽었을 때 가나안 땅에 자신의 흔적 하나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흔적은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아주 미미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는 하나님과 함께 하였던 위대한 믿음의 흔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무덤을 통하여 세상에서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3. 언약을 맺는 고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어떤 언약을 맺었습니까? 그가 언약을 맺는 과정을 보면 연약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이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약을 기다리다 지쳐서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12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뒤에서 졸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오버랩이 됩니다. 둘째는 마음이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환상 중에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1절). 그러나 언약을 기다리면서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라고 합니다”(12절). 그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언약을 맺을 때 육신과 마음의 연약함을 모두 드러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언약을 이루시는 주체는 연약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맺을 때 쪼갠 고기 사이로 쌍방이 서로 지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을 상징하는 횃불만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고 합니다(17절). 이것이 바로 은혜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은 책임이 없으며 하나님에게만 책임이 있는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우리는 서로 책임을 져야하는 쌍방 간의 율법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을 지는 은혜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실 때 아브라함이 지칠 때까지 왜 기다리도록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시간과 때를 주관하심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몸에서 씨가 태어나는 것도 가나안 땅을 소유하는 것도 모든 때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15,16절).
아브라함이 여러 가지 고민을 말하였지만 하나님은 이미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답을 주셨습니다(1절). 처음에는 그가 현실에 대한 고민이 더 커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민들을 통해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일방적으로 책임져주시는 은혜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자녀를 얻는 것이 상급이 아니고, 땅을 소유하는 것이 상급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가장 큰 상급이라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이 나를 버리는 것도 배신이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해하는 것도 배신이냐”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도 배신입니다. 새해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체가 가장 큰 상급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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