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2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아는가?
설교 본문 : 마가복음 4:26-29절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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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후 둘째주일입니다. 요즈음 월드컵 열기로 지구촌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사복음서중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3-8절에 기록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강조점이 다릅니다. 전반부의 3-8절에 기록된 비유는 씨의 성장에 좋은 토질과 삽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는 풍성한 수확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본 절의 비유는 씨앗을 자라게 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신비로운 능력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제목을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 비유”라고 붙입니다. 알지 못하게 자라는 씨앗은 우리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본 절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들이 할 수 없는 범위를 겸손히 깨닫고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할 수 있도록 맡기신 일들이 있습니다. 땅에 씨를 뿌리는 일은 우리들이 할 수가 있습니다. 마가는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라고 합니다(26절).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뿌리는 동역자로 삼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합니다(고전3:9). 신앙생활에서 가장 귀한 직분은 바울처럼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뿌리는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인 우리들은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합니까? 생명이 있는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죽은 씨앗을 뿌리는 것은 어떤 기대도 할 수가 없습니다. 겨자씨 한 알이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31,32절) 겨자씨 한 알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생명의 씨앗을 땅에 뿌릴 때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씨앗은 어느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의 씨앗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는 곳에는 생명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의 씨앗을 통해서만 생명이 살아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때가 중요합니다. 자연의 이치는 씨를 뿌리는 때가 있고 추수의 때가 있습니다. 농부가 씨 뿌리는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계절이 맞는 때에 씨를 뿌려야만 수확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은혜의 때가 있습니다. 은혜의 때를 놓치면 영원한 생명을 수확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 합니다(고후6:2). 우리들이 은혜의 때를 놓치지 말고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 구원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교회와 관련된 세 번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죽음은 항상 예고하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말씀의 씨앗을 뿌려서 은혜의 때를 놓치지 않고 구원의 열매를 수확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마가는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합니다(27절). 여기서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는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 씨앗을 뿌린 농부는 씨앗이 나서 자라나는 일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씨앗을 자라나게 할 수 없습니다. 농부가 김을 매고 물을 주는 일은 부차적인 요소입니다. 본절에서 중요한 관점은 씨앗이 자라나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씨앗을 싹틔우고 자라나게 하는 것은 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겨진 일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을뿐더러 어떻게 그리되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씨앗을 뿌린 농부가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생명의 신비가 담겨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이 알지 못한다고 씨앗의 성장이 방해받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의 성장 과정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우리들이 알지 못하지만 씨앗의 성장처럼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명의 신비를 깨달았던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고백합니다(고전3:6,7). 그는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했던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느 방향으로 자라나고 있습니까? 자신이 한 영역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영역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까? 자신이 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 더 커질수록 성숙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성장합니까? 마가는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고 합니다(28절). 여기서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는 열매를 맺게 하는 주체가 땅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의도는 땅이 어떤 능력을 지녔다기보다는 그 땅과 생명이 있는 씨앗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씨앗의 성장 과정을 싹에서 이삭으로 그리고 충실한 곡식이 되는 것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이 과정을 건너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열매도 과정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이 과정을 건너뛰어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열매도 과정 없이 수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열매라고 무조건 추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가 익어야만 추수하기 위해서 낫을 댈 수 있다는 것입니다(29절).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고 익어가는 과정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은 없습니까! 교회에서 무슨 행사를 하나 치루면 당장 “어떤 열매가 있었느냐?”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판단으로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며, 익어가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씨만 뿌리고 싹이 나고 자라나며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추수에 대한 판단을 우리들이 하고 있다면 얼마나 큰 모순입니까! 추수의 때에 수확하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들이 넘어지고 실패할지라도 주님을 의지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 할수록 가장 크게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목양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우리 교역자들과 최선을 다해 목회하고자 하지만 모든 곳에 손이 미치지 못하는 한계를 느끼면서 할 수 없는 영역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새벽에 기도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밀려와서 기도하지 못하고 탄식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몇 주 전 필립 안시가 인용한 뷰크너의 글로 작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뷰크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함없이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최소한 열 번 중 다섯 번은 ‘아니’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니’가 ‘그래’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니’는 당신이 복음을 의심하기도하는 연약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정말 ‘그래’라고 답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죄의 고백과 눈물, 그리고 감사가 뒤범벅된 진정한 ‘그래’가 된다는 것입니다. 뷰크너의 글을 보면서 ‘그래’라고 대답하는 것도 고민하는 과정이 있을 때 자라나서 익어가는 열매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자라나게 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작은 위로를 받으며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고, 알 수 있는 것보다도 알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그 꼭짓점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작점이 되며, 하나님의 숨은 뜻을 이루어가는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다 할 수 없고, 다 알 수 없지만 오늘도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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