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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생수가 흐를 때”/ 에스겔 47장 1-12절/ 7월 13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4-07-13 추천 3 댓글 0 조회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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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3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성령의 생수가 흐를 때”

설교 본문 : 에스겔 47장 1-12절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0. 들어가는 글

7월 둘째주일입니다. 장마가 사라지고 14년 만에 최악의 7월 폭염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손길로 폭염을 잘 견딜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여러 번 설교한 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에서 물이 흘러서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3절)를 교회만 밟고 다니는 발목 신앙으로 비유하였고, “물이 무릎에 오르고”(4절)를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신앙으로 비유하였고, “물이 허리에 오르고”(4절)를 겸손히 섬기는 신앙으로 비유하였고,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5절)를 성령이 충만한 신앙으로 비유하여 여러 차례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처음 설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서 새 열매를 맺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

에스겔은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에서 흐르는 물이 가득하여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다고 선포를 합니다(5절). 여기서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는 자신의 힘으로 건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의미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포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면 성령의 생수가 다 덮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의 생수가 덮을수록 자신의 힘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능력만을 의지함으로 건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근본적인 의미로는 우리들의 힘으로는 구원의 강을 건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의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식과 힘으로 구원의 강을 건너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의 강을 건너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들어나지 않도록 덮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물이 발목에서 무릎으로, 허리로, 물이 가득해질수록 자신의 모습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는 자신의 죄악 된 성품을 성령의 생수로 완전히 덮어야 합니다. 성령의 생수가 덮이지 않는 만큼 죄악 된 성품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매일 성령의 생수로 덮어야만 자신의 성품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어린아이 신앙을 내려놓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히 섬기는 성령 충만한 신앙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 앞에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분 뒤에 자신을 감출 수 있도록 성령의 생수가 넘치길 소망합니다.

 

셋째로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물이 가득한 곳에서 헤엄치기 위해서는 물에 몸을 맡겨야 합니다. 물에 몸을 맡기지 못하면 뜰 수가 없습니다.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맡기는 만큼 뜰 수가 있습니다. 몸을 물에 맡기는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에 몸을 맡기는 것은 신뢰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 되어서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성령 충만한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다시 살리는 생명의 물

성전에서 흐르는 물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모든 생명을 되살아나게 하고 있습니다(8절). 여기서 되살아난다는 것은 먼저 죽어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생수가 이르는 곳마다 모든 것을 다시 살리고 있습니다(9절). 일반적으로 바다가 강을 흡수하는 현상과는 달리 그 생수의 강은 생명의 능력으로 죽음의 바다로 들어가서 생명의 바다로 되살리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생수가 흐르지 않는 땅은 어떤 모습입니까? 에스겔은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라고 합니다(11절). 성령의 생수가 흐르지 않는 땅은 생명이 살지 못하는 죽음의 땅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생수가 흐를 때 죽었던 모든 것들이 되살아나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성령의 생수가 흐르지 않는 마른 신앙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수가 내 안에서 넘쳐흐를 때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죽었던 심령에 성령의 생수가 넘치도록 흘러서 주님의 생명이 풍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새 열매를 맺으리니

성령의 생수가 넘치도록 흐르는 목적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에게 성령의 생수가 흘러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성령의 생수가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12절).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생수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흘러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수가 흐르지 않는 섬김은 열매도 맺기 전에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메마른 심령은 먼지만 일으키면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계속 흘러야만 혼란스럽게 하는 메마른 심령의 먼지를 잠재우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열매와 잎사귀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열매가 없이 잎만 무성한 신앙은 예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막11:13,14). 신앙의 활동은 잎사귀처럼 많은데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는 잎사귀는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12절). 신앙의 행위가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하면 상처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행위가 열매로 나타날 때 그 행위에 치료의 역사까지 더해지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의 행위에 열매가 나타나서 치료의 역사까지 나타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는 달마다 새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신앙은 과거에 맺었던 열매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끊임없이 흐를 때 달마다 새 열매를 맺어가는 것입니다(12절).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믿음은 “과거에 열매를 맺었느냐?”가 아니라 “지금 열매를 맺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새 열매에 대하여 묵상하는데 지난 신학 심포지엄 때 박응천 교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백조가 죽기 전에 노래를 합니다. 그 때 부르는 노래가 백조의 전 생애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워서 스완송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스완송과 새 열매가 연결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흘러서 어제 맺었던 열매보다도 오늘 맺는 열매가 더 아름다운 스완송이 될 때 새 열매가 되고, 내일 다시 맺을 열매가 더 아름다운 스완송이 될 때 또 다시 새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선포하는 설교가 지난주보다는 오늘이 더 좋은 스완송의 새 열매가 되고, 오늘 보다는 다음 주의 설교가 더 좋은 스완송의 새 열매가 될 수 있기를 사모합니다. 또한 어제보다는 오늘의 믿음이 더 좋은 스완송의 새 열매를 맺고, 결국 죽기 전에 내 믿음이 가장 아름다운 스완송의 새 열매를 맺으면서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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