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0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누가 의롭다함을 받았는가?
설교 본문 : 누가복음 18장 9-14절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0. 들어가는 글
7월 세 번째 주일입니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해만 없다면 태풍이라도 와서 무더위를 식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느 실업자가 씁쓸하게 한숨을 쉬면서 “태풍은 좋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진로가 있어서”라고 합니다. 옆에서 듣던 실업자가 덤으로 “세력까지 있다.”고 합니다. 서민들의 어려운 현실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기도할 때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10절).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누가 의롭다함을 받고 돌아갔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떤 기도가 주님께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기도인지 깨닫고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바리새인의 기도
우리는 먼저 바리새인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바리새인은 습관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서서 따로 기도하여”는 성전에서 서 있는 자세로 기도하는 종교 의식을 말합니다(11절).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가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밥 먹듯이 습관에 따라 형식적인 기도를 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이 습관에 따라 형식적인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습관적으로 종교 의식을 지키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습관이 기도에 그대로 묻어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처음부터 형식적인 습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사랑이 없는 종교 생활을 할 때 형식적인 습관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도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금식하며 율법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짐으로 자신도 모르게 형식적인 습관만 남아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바리새인처럼 사랑이 없는 습관적인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바리새인은 비교의식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반복적으로 다른 사람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였습니다(11절). 그의 기도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비교하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드리는 감사는 우월의식이 숨겨진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유대법에 의하면 금식은 1년에 한 번 속죄일에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복을 받기 위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도 금식하였습니다(12절). 그리고 금식한 후에 헝클어진 머리에 얼굴을 희게 하고, 구김살이 간 옷을 입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예루살렘 장에 나가서 자신들의 경건을 자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금식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슬픈 기색과 얼굴을 흉하게 하지 말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보이라고 합니다(마6:16,18). 바리새인은 거룩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되려고 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보이려고 하는 믿음입니까? 되려고 하는 믿음은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보이려고 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더 의식하는 것입니다. 부디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경건하게 되려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로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 모든 것이 “나는”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11절).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인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드렸다는 것을 강조합니다(12절).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몰라서 자기만족을 채우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를수록 자기중심적이며, 자기만족을 채우려는 욕구가 강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행함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약2:26). 그러나 우리들이 어떤 행함을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갈수록 자기중심과 자기만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세리의 기도
바리새인의 잘못된 기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세리의 기도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로 세리는 자격이 없는 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13절). 세리는 바리새인과 대조적으로 멀리 성전 밖 이방인의 들에 서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하늘을 우러러 보는 정상적인 기도자세 조차도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리는 기도할 자격조차도 없는 부족한 존재로 고백하였습니다. 자격이 없는 자들이 점검해야 할 질문은 “나는 삶에 희망이 있는가?”에서 “나는 무엇에 희망을 걸고 있는가?”로 바꾸어야 합니다. 자격이 없는 존재가 자신의 삶에 희망을 걸면 더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격은 없지만 예수님께 희망을 걸면 살아갈 수 있는 가치가 생기는 것입니다.
둘째로 세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13절). 그는 가슴을 치면서 애통하는 심정을 고백하였습니다. 세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증언부언의 고백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입술이 아니라 마음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세리는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면서 간절히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은 기도의 주도권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지만 세리는 기도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세리는 기도의 결과를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처분에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지면 결과는 자기가 결정해놓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포장합니다. 진정한 기도는 세리처럼 마음을 다해 기도하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처분에 따르는 것입니다.
셋째로 세리는 자신이 누구인줄 아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4)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속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바리새인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세리에게는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가 의로워서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리처럼 예수님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인정받는 것입니다(14절).
청년 두 명이 성경을 가지고 토론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집힌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을 때 주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내용이었습니다(요8:7). 한 청년은 자신도 죄인임을 고백하며 예수님처럼 용서를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청년은 엄한 징계를 통해서만 세상의 죄를 줄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두 청년은 목사님에게 찾아가 어느 입장이 옳은지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죄인임을 고백하는 청년에게는 큰 돌을 주워오라고 하였고, 징계를 주장하는 청년에게는 작은 돌을 여러 개 주어오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지난 후 다시 주어온 돌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큰 돌을 가져온 청년은 쉽게 제자리에 갖다 놓았으나, 작은 돌을 가져온 청년은 원래의 자리를 기억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큰 죄는 언제 지었는지 알고 회개 할 수 있지만, 작은 죄는 하찮게 여겨 잊어버리기 쉽다는 것입니다. 만약 죄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실제로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죄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어서 음행한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죄를 지으면서도 의롭다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보다 큰 죄를 지었지만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들이 바리새인처럼 습관적이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받은 은혜를 모르고 자신을 나타내는 기도를 하지 않게 하옵소서. 또한 세리처럼 자격이 없는 죄인이지만, 마음을 다해 회개하며, 겸손히 예수님의 용서가 필요한 기도를 드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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