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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로 여기는가?/ 창세기 15장 1-7절/ 9월 21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4-09-28 추천 3 댓글 0 조회 675



2014년 9월 2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무엇을 의로 여기는가?

설교 본문 : 창세기 15장 1-7절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0. 들어가는 글

9월 셋째주일입니다. 제가 십년동안 부교역자로 섬겼던 교회는 매년 전국 목회자 세니마를 개최하였습니다. 이중표 목사님의 영성이 깊어서 그런지 수천 명씩의 목회자가 모여들었습니다. 세미나 기간 중에 주차봉사 하는데 참석한 목사님들이 편한 자리에 주차하고 싶어서 양보 않고 다투는 모습에 민망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도대체 “양보와 은혜는 어떤 상관이 있을까?” 고민해 본적도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양보를 통하여 복의 길을 갔던 아브라함과 양보하지 못함으로 멸망의 길을 갔던 롯이 등장합니다. 오늘 분문에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롭다 인정받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우리들도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는 믿음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어떻게 의롭다 인정받았는가?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람에게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합니다(1절). 여기서 아브람의 두려움은 두 가지 입니다. 외부적으로는 전쟁에서 잡혀간 조카 롯을 구출한 후에 그들에 대한 보복이 두려웠습니다. 내부적으로는 하나님이 자녀를 약속하셨는데 지금까지 후손이 없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이 방패가 되시며, 자녀가 없는 두려움은 하나님이 큰 상급이 되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큰 상급이라고 하였는데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2절). 그리고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고 자신의 방법을 제시합니다(2절).

 

당시 풍습은 자식이 없으면 종들 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을 입양하여 대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4절). 이 말씀에 대하여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다”고 합니다(6절).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의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의 방법은 현실에서 당장이라도 이룰 수 있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눈에 보이는 현실을 ?는 인생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어떻게 자신의 방법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방법과 자신의 방법이 충돌할 때 “어떻게 자신의 방법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길을 아브라함의 나그네 인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가 제일 처음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부르심에 순종하여 고향에서 가장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가장 번영한 도시에서 가장 작은 시골 변두리로 떠난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합니다(히11:8).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떠났지만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따라간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에게 부르심은 가장 작은 시골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로 부른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 부르심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합니까? 세상 기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처럼 인도하는 부르심은 좌천당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세상 중심부로 진출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포장합니다. 지금 시대의 진정한 부르심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세상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 순종함으로 세상 중심부에서 밀려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소유가 많아져서 함께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창13:6). 그 여파로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일까지 생겼습니다(창13:7). 이런 사건들이 계기가 되어서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선택권을 양보하였습니다(창13:9). 롯은 주저함 없이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였습니다(창13:10). 아브라함은 모든 면에서 먼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선택에 대한 기득권을 조카 롯에게 양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은 땅을 많이 소유한 자를 부자라고 부릅니다. 지난주 현대차 회장이 한전 부지를 10조에 매입하여 땅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준은 하나님을 소유한 자가 영적으로 부요한 자입니다. 우리들은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세상에서 땅의 부자입니까? 아니면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 부요함입니까? 부디 땅의 부자만 되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요함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어떤 방법으로 소유할 것인가?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 부족 간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싯딤 골짜기에 있는 다섯 부족이 메소포타미아의 엘람 왕 그돌라오멜에게 12년 동안 조공을 받치면서 섬기다가 십삼 년에 배반하였습니다(창14:4). 배신에 대한 보복으로 그돌라오멜과 함께한 연합군이 침략하여 싯딤 골짜기의 연합군과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방의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제물과 양식을 빼앗아 갔는데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습니다(창14:12). 아브람이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좇아가서 그들을 쳐부수었습니다(창14:15). 그리고 모든 빼앗겼던 제물과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습니다(창14:16).

 

소돔 왕이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에게 찾아와서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고 합니다(창14:21). 그의 제안에 아브람은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고 답변합니다(창14:23). 아브람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하루아침에 거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시에 가장 타락한 도시였던 소돔 왕의 제안은 세상의 유혹이었습니다. 만약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소돔 왕이 치부하게 해주어서 그에게 속한 자로 소문나는 것입니다(창14:23). 이런 소문이 나면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팔아먹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제안이 유혹이라는 것을 분별하고 물리쳤습니다. 그는 음란한 도시의 타락한 물질을 소유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통하여 깨끗한 물질을 소유하기 원했습니다. 그의 중심은 물질에 속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삶이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은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1절). 또한 자신의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을 때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6절). 우리 모두 물질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이 지극히 큰 상급이 되며, 자신의 방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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