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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 잠언 10장 24 - 32절/ 10월 19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4-10-19 추천 4 댓글 0 조회 1038




2014년 10월 1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설교 본문 : 잠언 10장 24 - 32절

 

24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25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 26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 28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29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30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 31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32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0. 들어가는 글

10월 셋째주일입니다. 지난주에 영원한 현역이라고 존경받던 방지일 원로 목사님이 103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저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방목사님의 장례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그분이 ‘격산덕해’의 모범을 보이셨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저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뜻은 “인격은 산처럼 높고 덕은 바다처럼 넓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저도 ‘격산덕해’의 삶으로 성숙해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잠언에서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이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깨닫고 부디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의인과 악인에게 무엇이 임하는가?

오늘 본문에서 잠언 기자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를 통하여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악인에게는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고 의인에게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24절). 구체적으로 악인과 의인에게는 어떤 결과가 임합니까? 저는 오늘 분문에서 그 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수명은 짧아지느니라”고 합니다(27절). 본절에서 장수를 하든지 수명이 짧든지 죽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합니다(히9:27). 우리들이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심판을 받느냐?”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들이 죽은 후에 염소의 자리에 있는 악인의 심판이 아니라 양의 자리에 있는 의인의 심판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분문에서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고 합니다(28절). 여기서 소망은 세상의 헛된 소망이 아닙니다. 본절에서 “끊어지느니라”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짐으로 소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면 낙심과 불안 중상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고 합니다(시43:5).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예수님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하나님께 둠으로 낙심과 불안을 이기고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타나서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한 상황보다도 “소망을 누구에게 두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고 합니다(29절). 본절에서 ‘여호와의 도’는 ‘여호와의 길’로서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궁극적으로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행악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기 위하여 여호와의 도에 순종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회오리바람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나님은 우리들이 여호와의 도를 따르는 것이 진짜 인지를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도구는 ‘회오리바람’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회오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고 합니다(25절). 하나님은 회오리바람을 통하여 우리를 어떻게 시험하십니까?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바람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십니다. 마태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합니다(마3:12). 바람에 알곡은 남아있지만 쭉정이는 날아갑니다. 우리들이 살아있는 동안 고난의 바람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알곡처럼 남아있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산성이 되신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29절). 예수님께 붙어있다면 어떠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와도 쭉정이처럼 날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고 합니다(30절). 우리들이 주님께 붙어있는 알곡이 되어서 어떠한 인생의 회오리바람에도 영영히 이동되지 않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바람은 반석 위와 모래 위에 지은 집을 구별하십니다. 마태는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라고 합니다(마7:24,25).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고 합니다(마7:26).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인생의 회오리바람이 불러올 때 반석 위에 있는지 모래 위에 있는지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분문에서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25절)는 반석 위에 세워진 믿음의 기초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인생의 회오리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반석 위에 세운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입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마지막으로 입술을 통하여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입술이 열납 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분문에서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고 합니다(32절). 본절에서 ‘기쁘게 할 것’은 ‘열납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입술은 하나님께 열납 되어 기쁘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절에서 ‘패역’은 뒤집고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고 바꾸는 패역한 입술은 하나님께 열납 될 수도 없고 기쁘시게 할 수 도 없습니다. 사람의 말도 뒤집고 바꾸면 마음이 상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고 바꾸는 일에는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둘째는 입술이 “어떤 열매를 맺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합니다(31절). 여기서 ‘내어도’는 싹이 나서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입은 지혜의 열매를 맺게 하는 싱싱한 나무입니다. 후반부에서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한다”는 것이 나무라는 것을 뒷받침 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고 바꾸는 혀는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하고 베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많은 열매들 중에 입술의 열매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본문을 묵상하면서 입술이 하나님께 열납된다는 것에 대에 너무 의식하지 못하며 지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코람 데오를 외치면서 내 입술이 하나님께 열납 된다는 것을 연결시키지 못하며 신앙 생활했던 것입니다. 내 입술이 하나님께 열납된다는 것을 알고 살았다면 그래도 많은 실수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입술을 통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맺었던 열매들이 입술의 열매를 맺지 못함으로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디 입술의 말들이 하나님께 열납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맺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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