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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 요한복음 1장 43-51절/ 12월 7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4-12-07 추천 4 댓글 0 조회 779




2014년 12월 7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설교 본문 : 요한복음 1장 43-51절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0. 들어가는 글

12월 첫째 주일이자 대림절 둘째주일입니다. 몇 달 전에 <리더는 인격이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위대한 리더는 거의 완벽한 사람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론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가장 위대한 기회는 우리의 약점 속에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오히려 약점을 숨지지 않고 드러낼 수 있을 때 리더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중에 가장 약점이 많은 사람은 설교를 하는 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약점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빌립과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만나면서 약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만나서 해야 하는 큰 일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어떤 것이 큰 일인지 깨닫고 우리도 큰 일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빌립이 나다나엘을 어떻게 예수님께로 인도했는가?

예수님은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43절).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바로 나다나엘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의 믿음을 보면 참으로 단순합니다. 그리고 그의 단순함에 순종이라는 반응이 담겨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어떻게 인도하였습니까? 그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라고 합니다(45절). 그는 예수님이 율법과 예언서의 모든 말씀을 성취하는 메시야로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충실한 나다나엘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열정적으로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46절). 그가 반문한 이유는 빌립이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전했기 때문입니다(45절). 빌립은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고백이 없는 것입니다. 율법에 정통했던 나다나엘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갈릴리 나사렛은 율법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마땅한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주의자였던 나다나엘은 자신의 틀로 인하여 예수님을 배척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틀을 깨뜨려야만 참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은 모두 약점이 있었습니다. 빌립은 신앙고백이 불완전하였고, 나다나엘은 자신의 틀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완전해서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는 채로 주님을 만나서 성숙해졌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들도 부족하고 약점이 많아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닮아감으로 성숙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빌립은 나다나엘의 반문에 논쟁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말했습니다(46절). 그는 나다나엘에게 고정 관념을 내려놓고 직접 예수님을 만나서 확인해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틀이 강한 사람을 깨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체험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47절). 주님은 ‘참으로’와 ‘간사한’ 것을 대조시켰습니다. 여기서 ‘참으로’는 겉과 속이 일치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간사한’ 것은 고기를 낚기 위한 미끼처럼 상대방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만나고 있습니까? 참으로 겉과 속이 일치를 이루는 만남입니까? 아니면 간교하게 겉과 속이 다른 만남입니까?

 

이어서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48절)라고 질문할 때 주님은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48절)고 대답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무성한 커다란 잎으로 그늘을 드리웠으므로 당시의 랍비들은 율법을 교육하고 기도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말씀과 기도하는 영혼을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는 주님께 감동하여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49절). 그는 예수님을 주님이 아니라 랍비라는 율법의 선생으로 고백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모든 사람의 구원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자신의 틀 안에 가두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여전히 불완전한 고백과 자신의 틀에 갇혀있습니다.

 

3.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빌립과 나다나엘을 보면 완전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하고 약점이 많아서 만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부족한 우리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나다나엘에게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고 한 것입니다(50절). 주님이 말한 큰 일은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는 것입니다(51절). 여기서 가장 큰 일은 하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문을 여는 것은 우리들의 힘이 아니라 오직 인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대림절 기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십자가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열기 위한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열었던 성경의 두 인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구약에서 야곱은 형 에서를 이겨서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가 아닌 간교함으로 속여서 형의 장자 권을 뺏은 후에 도망쳤습니다(창27:35). 그는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것을 보았습니다(창28:32). 하나님은 야곱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었습니까? 세상에서 성공하여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사닥다리로 하늘에 닿는 것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로 연결된 사닥다리는 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자되신 예수를 통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는 하늘에 닿을 수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스데반 집사는 길거리에서 돌에 맞아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비참한 죽음을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는 고백 때문입니다(행7:55,56).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지만 하늘 문을 여는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만들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보면서 세상에 무엇을 남겼느냐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죽으면서 하늘 문을 여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 해 동안 어떤 문을 열기 위해 마음을 다했습니까? 이 땅에서 태어나서 가장 큰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한 성공의 문을 열었을지라도 하늘 문을 열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수고에 불과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할지라도 하늘 문을 열지 못한다면 모든 수고가 헛된 것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들에게 실패와 성공을 결정하는 가장 큰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여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 인생의 모든 여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 문을 여는 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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