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5일 성탄 설교
설교 제목 : 진정한 경배는 무엇인가?
설교 본문 : 마태복음 2장 1-12절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입니다. 어느 목회 포럼에서 한국인들의 미래신앙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설문 조사가 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왔습니다. 하나는 ‘소속이 없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은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신앙이 없는 소속인’이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둘 다 문제가 있는 부류지만 이런 부류가 미래로 갈수록 많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부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소속이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교회를 섬기는 지체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금번 성탄에 우리들이 ‘소속이 있는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진정한 경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성탄의 주연은 누구인가?
성탄은 주연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성탄의 주연을 빛내는 조연상을 준다면 동방 박사 세 사람이 가장 유력한 후보가 될 것입니다. 동방 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 탄생에 맞추어서 베들레헴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메시야의 별이 나타나서 그들을 베들레헴까지 인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2절). 그들은 동방에서 메시야의 별을 보고 찾아온 것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찾아온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메시야의 별을 보는 수단과 예수님을 경배하는 목적을 혼동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을 본적이 있습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면서 웅장하고 섬세한 건축 디자인과 세련된 모자이크 예술의 설명을 들으면서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구경이 끝난 후에 허전함을 감출길이 없었습니다. 그 마음을 추적해본 결과 정작 성당 건축의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당에서 주님께 경배 드리는 목적은 사라진 채 건물을 구경하는 사람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탄의 본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성탄절이 예수님께 경배하는 것을 잃어버린 채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는 것은 별 자체가 주는 기쁨이 아니라 예수님께 경배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목적 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10절). 우리들이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주님께 예배드리는 목적보다 더 앞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고 오직 예수님께 경배하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성탄의 반응들?
예수님이 태어나던 첫 번째 성탄은 어떤 반응들이 있었습니까? 동방 박사들이 메시야의 별을 잃어버리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헤롯왕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그 지역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3절). 결국 헤롯도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거짓으로 반응했습니다. 헤롯은 동방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를 찾아서 알려주면 경배하겠다고 하였습니다(7,8절). 그러나 그의 속셈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메시야를 죽이고자 거짓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거짓은 없습니까? 주님보다 자신이 우선이 되면 거짓된 반응이 나옵니다. 헤롯도 메시야보다는 자신의 기득권이 우선이 되어서 거짓 반응을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보다 자신의 일이 우선되어서 거짓된 반응을 한 것은 없습니까?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을 경배하는 일이 우선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모든 일을 포기하고 산 넘고 물 건너서 베들레헴까지 온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어떤 일보다도 예수님을 경배하는 일이 우선이 되길 소망합니다.
헤롯왕은 동방 박사들의 방문으로 인하여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4절). 그들은 선지자의 기록을 통하여 유대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 목자가 나올 것으로 보고하였습니다(6절). 여기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지식적으로만 반응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기록으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알았지만 경배하러 가지는 않았습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아는 것과 순종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들도 성경을 아는 만큼 얼마나 순종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절대 믿음의 척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만큼 순종할 수 있느냐?”가 믿음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3. 진정한 경배는 무엇인가?
동방 박사들은 헤롯왕의 말을 듣고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순종하여 베들레헴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들은 초행길이라 어려움이 많았지만 메시야의 별이 나타나서 그들의 길을 다시 인도하여 주었습니다(9절). 동방 박사들은 오직 순종으로 반응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의 길을 목적지까지 인도해 주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집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11절). 오늘 본문에서 메시야의 별이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근거로 신앙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논의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신앙의 방향을 알았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최근에 선교사님의 편지를 통하여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방향을 찾는 것이 정말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성경 말씀이 예수님께로 방향을 가리키는 정확한 나침판이기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방향을 몰라서라기보다는 그 방향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리를 따르는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요8:32). 메시야의 별이 동방 박사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야의 별을 따라가는 것이 진리인 줄 알았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따라가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진리의 방향을 몰라서보다는 그 진리를 따를 수 있는 자유가 없어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길은 진리를 따르는 자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시대가 진리의 방향을 알면서도 그 진리를 따를 수 있는 자유가 없기 때문에 영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진리를 따를 수 없도록 결박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들을 결박하는 것들에서 풀려나야만 진리를 따를 수 있는 자유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금년 성탄에는 세상의 모든 결박에서 풀려나 오직 진리를 따르는 자유로서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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