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8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누구의 지시를 받는가?
설교 본문 : 누가복음 2장 25-33절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0. 들어가는 글
15년도 세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주 어린이 집 보육교사가 네 살배기 아이가 김치를 남겼다고 몸이 공중에 뜰 정도로 때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해 아동이 폭행을 당하는 순간 다른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줄줄이 아동 학대가 폭로되면서 보육 공포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천의 폭행한 보육교사는 ‘습관을 고치기 위한 훈계 차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보육 교사의 훈계가 너무 과해서 아동학대로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견문발검’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습니다. ‘견문발검’은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사소한 일에 크게 화를 내며 덤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작은 일에 너무 크게 반응하여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음을 다해 반응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시므온은 어떤 사람인가?
오늘 본문에서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왔습니다(27절). 성령의 지시를 받은 그는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28절). 죽기 직전에 아기 예수를 안고 찬송할 수 있었던 시므온은 어떤 사람입니까? 누가는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소개합니다(25절). 시므온은 첫째로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생활하는 모습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그의 비전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성령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를 보여줍니다.
시므온이 의롭다는 것은 내적인 부분이고, 경건하다는 것은 외적인 부분입니다. 그는 안으로 자신을 향해서 의로웠고, 밖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경건했습니다. 그가 안과 밖이 진실하게 일치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는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 받는 위로입니다. 시므온이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위로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400년 동안 침묵하였습니다. 그는 400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믿으며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위로해주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이 있다면 눈앞에 나타나는 세상의 타락과 불신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여 위로해 주신다는 소망이 희미해지기 때문에 의롭고 경건한 삶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이 재림하여 주시는 위로를 기다리기 때문에 세상은 변해가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누구의 지시를 받는가?
시므온은 400년 동안 침묵했던 이스라엘 위로를 인내하며 기다렸기에 의롭고 경건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흔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흔들릴 때 누가 붙잡아 주었습니까? 성령님이 그와 함께했습니다(25절). 성령님이 우리들과 함께 할 때 흔들려서 넘어지지 아니하고 끝가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므온은 성령님과 계속 연결되어 나옵니다. 그는 성령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습니까? 누가는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합니다(26절). 그는 성령님의 지시를 받는 관계였습니다. 이런 관계가 성령님과 바른 관계입니다.
여기서 성령님의 지시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시므온이 주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할 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님이 지시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성령님의 지시를 받고 싶다면 주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내 뜻대로 이루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는 기도는 성령님을 조정하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 원대로 이루어 싶어서 성령님을 조정하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구함으로 성령님의 지시를 받는 기도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과 주객이 전도되지 말아야 합니다.
3. 성령의 지시를 받는 인생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시므온은 성령이 그 위에 계셨고(25절),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26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27절). 이처럼 성령의 지시를 받으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28절). 찬송의 이유는 오직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찬송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둘째로 말씀하신대로 믿었습니다(29절). 성령의 지시는 주님의 말씀과 일치를 이룹니다. 주님의 말씀을 떠난 성령의 지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30절).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로 주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그는 주의 구원을 봄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바라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주의 구원을 보는 것보다도 더 큰 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의 구원을 본 것이 세상의 어떤 일보다 가장 큰 일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이 오늘 교회를 나온 것도 주의 구원을 보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도 주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여기서 저는 오늘 본문과 관련된 좋은 예화를 찾아 감동주면서 설교를 마무리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난주처럼 금요기도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설교 말씀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지시가 무엇입니까?”를 구체적으로 묻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 바울이라는 생각과 함께 사도행전 13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합니다(행13:2). 여기서도 금식 기도할정도로 간절히 기도할 때 그 응답으로 성령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지시는 주님이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따로 세우는 것입니다. 주님이 불러 시키는 일이 개인적으로는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주님의 사역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에게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의 구원을 보게 하는 전도입니다.
저는 ‘주님이 불러 시키는 일이’ 가슴에 언친 것처럼 턱 걸렸습니다. 우리들 중에서 성령의 지시로 하나님이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해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주님은 누구보다도 제가 성령의 지시로 주님이 불러 시키는 일에만 관심을 갖는지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목회자가 성령의 지시로 주님이 불러 시키는 일이 아니라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때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부디 새해에는 성령의 지시로 주님이 불러 시키는 일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새해에는 주님이 재림하여 주시는 위로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성령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령의 지시를 받게 하옵소서.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주님을 찬송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며, 주의 구원의 보게 하옵소서. 특별히 따로 세움을 받아서 성령의 지시로 주님이 불러 시키는 일을 순종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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