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5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왜 시험에 드는가?
설교 본문 : 민수기 21장 4-9절
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0. 들어가는 글
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주 초등학교 이후에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18세의 청소년이 무려 8천㎞를 날아가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이슬람국가'(IS) 테러 조직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18세 청소년을 IS로 향하게 한 것일까요? 김군은 초등학교 졸업 후에 전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로 살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김군의 성향은 인터넷 공간에서 IS을 동경하게 되고 결국에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요즘 김군처럼 정체성 확립이 안 된 청소년들이 이슬람 무장 테러 조직에 가입의사를 타진한다고 합니다. 삶에서 무엇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소속된 공동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합니다. 만약 김군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꼈다면 IS에 합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외톨이처럼 느끼는 영혼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소속감을 줄 수 있는 믿음의 공동체를 꿈꾸어 봅니다. 오늘 본문에도 길을 떠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 마음이 상하여 낙오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면서 왜 시험에 들었는지 깨닫고 우리들도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에 시험 들지 않도록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마음이 상한 이유는?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성령 충만을 원하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성령 충만은 커녕 시험 들어서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험 들어서 불 뱀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6절). 그들이 시험 들어 불 뱀의 공격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광야의 길을 가다가 마음이 상했기 때문입니다(4절). 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다가 마음이 상할 때 시험 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 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평탄한 ‘왕의 대로’가 있는 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였기 때문입니다(4절). 이미 그들은 광야에서 38년 동안 방황했는데 평탄한 지름길로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우회하여 힘든 길로 돌아가는 현실에 마음이 상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 상한 것이 어느 정도 수긍은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지름길로 빨리 가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먼 길을 갈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다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스피드의 시대입니다. 세상은 “얼마나 빨리 하느냐?”에 따라서 능력을 대접받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법칙은 빠른 것보다 “주님과 함께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상은 모든 것이 더 빨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빠른 세상에 떠밀려 살다보면 하나님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지금도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주님 만나는 것을 잊어버리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영적싸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름길로 빨리 가는 것보다도 “하나님과 함께 가느냐?”에 초점을 맞출 때 시험에 들지 않고 은혜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원망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5절).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원망이 합당한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우회했기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길을 우회하게 된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면 원망이 잘못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면 그들이 길을 우회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지름길로 가기 위해서 비용까지 지불하겠다고 하면서 에돔 족속에게 부탁하였지만 거절당했습니다(민20:21).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름길로 가지 못한 원인은 에돔 족속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길을 막는 에돔 족속이 아니라 그들의 길을 인도하는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노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분노의 대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종로에서 빰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는 것과 유사합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애꿎은 집사람에게 화풀이 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여하튼 누구에게 화풀이 하든지 분노의 원인은 “자기 기준이 얼마나 강하냐?”에 달려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기준에서 벗어나 지름길로 갈 수 없으니까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지금도 자기 기준에 매달리는 신앙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 우회하는 길로 갈지라도 주님의 뜻을 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소중한 것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었습니다(5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날마다 새벽이슬처럼 내려주신 만나는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불평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원망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은혜를 하찮은 것이 되게 합니다. 우리들도 자신의 기준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불평하여 하찮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여파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하찮게 여기다 보니 주님과 만나는 것이 싫어지게 됩니다(5절).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점점 싫어져 가고 있다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가장 귀한 것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기 기준대로 되지 않는다고 시험에 들면 불 뱀에 물리는 것입니다(6절). 시험 들어서 불 뱀에 물리면 어떻게 회복해야 합니까? 모세는 장대 위에 달린 놋 뱀을 쳐다본즉 살리라고 합니다(9절). 당연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본즉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와 동일합니다. 여기서 그들이 놋 뱀을 바라보기 전에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7절). 그들은 회개를 통하여 장대 위해 달린 놋 뱀을 바라봄으로 용서받고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자신의 죄악을 회개함으로 바라보는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회개가 없이 바라보는 십자가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땅에 교회가 무너지는 이유 중의 하나도 회개 없는 십자가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장대 위해 달린 뱀이 왜 놋 뱀입니까? 놋이 심판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를 하면 놋 뱀이 대신 심판을 받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회개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대신 심판을 받게 됨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회개 없는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 회개함으로 바라보는 십자가가 되어서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우리들이 시험 들어서 불 뱀들의 공격을 받는 이유는 지름길이 아니라고 마음 상하고, 자신의 기준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주님이 주신 가장 귀한 은혜를 하찮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부디 회개 없는 십자가가 아니라 회개함으로 바라보는 십자가가 되어서 진정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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