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용서에 대한 반응은?
설교 본문 : 마태복음 18장 21-35절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0. 들어가는 글
2월 첫째 주일입니다. 지난주 프랑스 파리에서 머물던 한국 청년이 SNS에 대통령 사저를 폭파하겠다는 글을 올리고, 청와대로 폭파 하겠다는 전화까지 걸었습니다. 국회의장 보좌관이었던 아버지는 사직서를 내고 파리로 가서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그 아들은 2년 전 육군 현역으로 자원입대했지만 적응을 못해 정신적으로 장애가 왔다고 합니다. 인천 공황에 도착한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용서를 빌면서 경찰에 압송되는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서 그런지 보좌관의 아들이 청와대 폭파 협박범이라는 충격보다도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굳이 설교를 시작하면서 사고 친 아들과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작게나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사고 친 아들을 위해 보좌관의 자리를 버리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찾아와서 용서하며 사랑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과 닮았습니다. 예수님도 하늘 보좌를 버리고 죄인 된 우리를 찾아와서 용서하며 사랑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깨닫고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용서에 대한 비유의 의미?
우연히도 2월 성품 훈련 달력의 주제가 용서입니다. 성품 훈련에서 용서를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의 기록을 없애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그들을 사랑하기”로 정의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는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답변합니다(21절). 율법의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는 일곱 번이라고 하면 칭찬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합니다(22절). 주님은 용서의 횟수를 정하지 말고 제한 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어떤 임금이 종들과 결산하는 비유를 말했습니다(23절).
예수님은 비유를 통하여 용서를 어떻게 다룹니까? 첫 번째는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주인은 결산을 위해 “만 달란트 빚진 자”를 데려왔지만 갚을 것이 없었습니다(24절). 주인은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고 했습니다(25절). 종은 갚을 수 없음에도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라고 변명합니다(26절). 주인은 그 종을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27절). 여기까지 종과 주인의 관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비유합니다. 주인이 종의 채무를 결산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죄 값을 결산합니다. 종이 채무를 갚을 수 없듯이 우리도 죄 값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주인이 종을 불쌍히 여겨 그 빚을 탕감하여 준 것처럼 주님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죄 값을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종이 수고나 노력없이 채무를 탕감 받은 것처럼 우리들도 수고나 노력없이 죄 값을 용서받은 것이 전적인 은혜입니다. 종이 주인의 탕감을 받아들이면 채무가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면 죄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동료와 동료의 관계입니다. 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종은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합니다(28절). 동료는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였지만(29절), 허락하지 아니하고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었습니다(30절). 주인으로부터 만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중의 지극히 작은 일부인 백데나리온을 다른 동료에게 맡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께 만달란트를 탕감 받으면 백 데나리온도 탕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보다도 동료에게 더 주인의 행세를 하였습니다. 만달란트 탕감 받은 종은 주인께 받은 은혜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큰 용서를 받은 우리들은 이웃들에게 작은 용서를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혹시나 주님께 받는 용서는 쉽게 생각하고 이웃에 대한 용서는 인색하게 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 어떻게 용서해야 하는가?
그 동료들이 백데나리온 빚진 자가 옥에 갇힌 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렸습니다(31절). 주인은 만달란트를 탕감하여 준 종을 불러다가 악한 종이라고 합니다(32절). 주인은 그를 왜 악한 종이라고 부릅니까? 첫째로 주인께 불쌍히 여김을 받았으면 동료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33절).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용서를 받았다면 이웃을 용서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용서를 받은 증거로 이웃을 용서하라고 합니다. 만약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께 받는 용서의 은혜를 모르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다른 영혼에게 구원을 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로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전하라고 합니다. 우리들이 주님께 받은 은혜가 있다면 그것을 이웃에게 나타낼 때 진짜로 받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라고 합니다(35절). 여기서 마음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용서들이 있기 때문에 단서를 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입으로만 하는 용서는 악어의 눈물이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사고를 친 아들에게 용서하며 사랑한다고 했던 말이 감동을 준 것은 마음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배가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부둣가에 배를 묶고 있는 밧줄을 풀어야 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배를 향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를 결박하는 밧줄을 풀어야 합니다. 우리를 결박하는 밧줄이 풀려야만 선장되신 주님께서 인생의 배를 인도해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결박하는 밧줄을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서란 우리를 결박하는 것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풀어서 주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3. 용서하면서 남는 의문점은?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은 좋은데 의문이 하나 남습니다. 만약 용서하는 상대방이 변화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입니다. 이 고민을 바울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합니다(롬12:19). 우리들이 용서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권한을 침범하지 말고, 주님이 갚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면서 정작 용서는 맡기지 못하는 모순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코리 텐 붐 가족은 네덜란드에서 시계제조업을 하면서 유대인들을 보호하였습니다. 결국 코리의 가족은 수용소로 보내졌는데 아버지는 열흘 만에 죽고, 언니마저 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 코리의 믿음은 수용소 감시원으로 일했던 무자비한 사람들마저 용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유는 증오가 아무리 정당해 보이더라도 미움을 받는 자보다 미워하는 자를 더 해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원수들을 용서하면서 “다른 사람을 용서치 않는 자는 자신이 반드시 건너야할 다리를 무너뜨리는 것이다”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우리들도 미워하는 자들을 용서함으로 반드시 건너야 하는 다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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