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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씨앗인가?/ 마태복음 13장 24-30절/ 2015년 3월 15일 주일 설교
조영식 2016-08-11 추천 5 댓글 0 조회 610




2015315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나는 어떤 씨앗인가?

설교 본문 : 마태복음 1324-30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0. 들어가는 글

사순절 넷째 주일입니다. 지난주 꽃샘추위가 매서웠지만 여기저기서 새순들이 돋아나면서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씨 뿌리는 계절이 다가옵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의 천국 비유가 일곱 개 나옵니다. 그중에 세 가지 비유가 씨 뿌리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씨 뿌리는 비유는 씨앗이 떨어지는 밭이 어떤 밭이냐에 따라서 열매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씨 뿌리는 비유는 가장 작은 겨자씨에 생명이 있으면 자라난다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씨 뿌리는 비유는 밭에 좋은 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씨앗인가?”에 대하여 돌아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어떻게 가라지가 생겨나는가?

사람들이 밭에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24). 그런데 어떻게 가라지가 생겨났습니까?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렸기 때문입니다(25). 여기서 가라지가 뿌려진 원인을 사람들이 잘 때에서 찾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의도는 가라지가 뿌려지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깨어있지 못함을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가 뿌려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주인이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는 것입니다(30).

 

해안가는 바람이 아주 세게 불다보니 바람을 막기 위해 집주변에 돌담을 쌓습니다. 관심 있게 보면 돌담들 사이에 구멍들이 나서 엉성하게 쌓여있습니다. 해안가로 이사 온 사람들이 시멘트로 돌담의 구멍들 막아서 보수합니다. 여름에 태풍이 불면 구멍이 뚫린 돌담들은 그대로 있는데, 시멘트로 구멍을 막은 돌담들은 넘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돌담들은 구멍사이로 바람을 받아들이며 길을 내주어서 그대로 있지만 시멘트를 바른 돌담은 세찬 바람을 거부하다가 결국 쓰러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세찬 고난의 바람이 불어올 때 돌담처럼 받아들이며 길을 내주는 사람은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은 시멘트를 바른 돌담처럼 견디지 못해 쓰러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없듯이 고난도 알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찬 바람도 머물러있지 않고 지나가듯이 고난에게도 길을 내주면 지나가는 것입니다. 부디 고난의 바람을 거부하다가 쓰러지지 말고 받아들여서 길을 내줌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어떤 것이 덧뿌리고 있는가?

오늘 본문에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는 뿌린 씨 위에 한 번 더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25). 레위기에서도 네 밭에 두 종자를 썩어 뿌리지 말며라고 합니다(19:19). 이는 덧뿌리면 두 씨앗 중 어느 한 씨앗도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 설교 때 한번 인용했던 글입니다. 어느 날 레위인이 번제에 쓰려고 어린양을 샀습니다. 그 것을 본 악인 세 사람이 빼앗으려 합니다. 레위인이 오자 첫 번째 악인이 나타나 '! 성자여 무엇에 쓰려고 더러운 개를 메고 가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의 것은 어린양이라고 대꾸했습니다. 조금 후 두 번째 사람이 똑같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의심이 생겨 어린양을 살펴보고는 안심했습니다. 조금 걸어가다 세 번째 사람을 만나자 그도 똑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정말인가 하여 결국 어린양을 땅바닥에 버려두고 황급히 가버렸습니다. 이처럼 덧뿌리는 목적이 의심하여 넘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레위인처럼 덧뿌리는 시험을 당했습니다. 주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의 씨앗을 받았습니다(3:17). 그 후에 마귀는 예수님께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의심하도록 덧뿌립니다(4:3). 두 번째로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계속 의심하도록 덧뿌립니다(4:6). 세 번째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유혹하여 하나님을 버리면 세상의 큰 것을 주겠다고 덧뿌립니다(4:9). 그러나 주님은 덧뿌리는 원수를 물리치고 끝까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의 씨앗을 간직했습니다(4:10). 우리는 레위인처럼 말씀의 씨앗을 받지만 그 위에 다른 것들이 덧뿌려짐으로 상처받고 시험들어 넘어집니다. 부디 예수님처럼 세상의 어떤 것이 덧뿌려질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말씀을 간직함으로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가라지를 가만 두는 이유는?

종들은 주인에게 좋은 씨를 뿌렸는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는지를 물었습니다(27). 주인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답변했습니다(28). 종들이 가라지를 뽑자고 할 때도 주인은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29,30). 주인은 밀밭에 가라지가 함께 있는 것을 수용합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교회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있는 것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추수 때까지 왜 가라지를 함께 두라고 합니까? 예전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나열했습니다. 오늘은 한가지에만 집중하고자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알곡이 되는 일에만 마음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온통 주변의 가라지만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친구 목사에게 한국 교회 문제에 대해서 열심히 말했습니다. 내 말을 듣던 친구 목사가 그것이 너의 영성에 무슨 영향을 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을 받자 뻘쭘해지면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주변의 일들에 대해 가라지인지를 판단하면서 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비켜가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곡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라지가 되어가고 있습니까?

 

지난주 어느 분에게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먼저 시나브로라고 적고 예수님을 닮아가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내 마음에 다가온 시나브로는 순수 우리말로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열매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맺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무슨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까? 정말 시나브로의 과정으로 가라지가 아니라 알곡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받은 세 가지 시험은 마귀가 덧뿌리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세상의 덧뿌리는 것을 물리치고 말씀의 씨앗을 간직해야 시나브로를 통해 알곡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적용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마귀는 첫 번째로 예수님께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4:3). 여기서 돌로 떡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라는 덧뿌림입니다. 두 번째로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4:6). 천사가 받아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사람이 되어라는 덧뿌림입니다. 세 번째로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합니다(4:9). 천하의 권세를 가질 만큼 힘 있는 사람이 되어라는 덧뿌림입니다. 저는 마귀의 덧뿌림으로 쓸모 있는 사람, 중요한 사람, 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몸부림치다가 정작 내가 알곡이 되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쓸모 있는 사람, 중요한 사람, 힘 있는 사람은 세상의 기준이며,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것보다도 알곡인가에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봄을 맞이하여 우리 마음에 말씀이 씨앗이 심겨져 세상의 덧뿌림을 물리치고 시나브로를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알곡의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고난의 바람을 거부하다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서 지나갈 수 있게 하시며, 우리가 받은 말씀의 씨앗을 의심케 하는 덧뿌림을 물리치게 하시며, 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주변의 가라지만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부디 쓸모 있는 사람, 중요한 사람, 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세상에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시나브로를 통해 알곡이 되는 일에 마음을 다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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