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2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그제서야의 은혜?
설교 본문 : 역대 하 33장 8-13절
8.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령한 일들 곧 모세를 통하여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9.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0. 들어가는 글
사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내우외환을 겪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경제 침체와 전세 대란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미국이 한반도에 사드 미사일을 배치하는 문제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에 가입하는 문제를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끼어서 눈치를 보는 형국입니다. 정말 안으로는 경제를 살리며, 밖으로는 실리 외교를 통하여 우리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므낫세는 12세에 왕이 되어서 55년 동안 다스렸습니다(1절). 그는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우상을 열심히 섬긴 왕으로 기록되었습니다(2-7절). 므낫세 왕을 보면서 양보다 질이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오래 사는 양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의 질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녹슬어 가기보다는 주님께 사용되어서 닳아 없어지는 편이 더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므낫세가 ‘그제서야의 은혜’를 깨닫고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유는?
므낫세의 아버지는 히스기야 왕입니다. 히스기야는 역대 왕들 중에서 전무후무하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 왕의 아들이 정반대로 우상을 열심히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단서는 므낫세가 12세에 왕위에 오른 것에 있습니다.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는 것이 전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의 손자 요시야 왕은 팔세에 왕이 되었지만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역대하34:1,2).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에게 반발심이 있었습니다. 그 근거로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라고 합니다(3절). 므낫세가 산당을 다시 세우는 것을 아버지와 반대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이 그의 아버지가 섬겼던 하나님에 대한 반발심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부모에 대한 반발심이 하나님께로 투영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므낫세가 12세에 왕이 되었다는 것은 아버지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지만 기도하여 15년 생명을 연장 받은 기간에 태어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왕하20:6). 히스기야는 생명을 연장 받은 후에 자신 밖에 모르는 삶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의 후손들이 나라가 망해서 바벨론 포로가 된다고 하여도 자신의 사는 날 동안만 태평하면 선하다고 하였습니다(왕하20:18,19). 이처럼 자신 밖에 모르는 아버지의 삶이 아들 므낫세에게 반발심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아버지가 생명을 연장 받지 않았다면 자신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존재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반발심이 되었을 것입니다. 므낫세의 반발심은 삶의 해석이 잘못되어서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보다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어난 일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만약 므낫세가 조금이나마 아버지의 내우외환의 삶을 이해하려 했다면 그의 삶의 해석이 반발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달라졌을 것입니다.
2. 그제서야의 은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므낫세는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11절). 이 사건을 통해 므낫세의 반발심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었습니까? 첫째는 환란을 당해서입니다(12절). 므낫세가 당한 환란은 말씀을 듣지 않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고 합니다(히12:11). 므낫세는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연단 받아서 회개함으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둘째는 크게 겸손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므낫세의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은 크게 겸손하였기 때문입니다(12절). 하나님은 크게 겸손한 기도를 받으십니다(13절). 역대기에서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고 합니다(역대하7:14). 역대기 기자는 우리들이 스스로 낮추어서 크게 겸손해질 때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가 된다고 합니다. 셋째는 끝자락에서라도 변화될 수 있도록 기다리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제서야’는 므낫세의 회개가 늦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13절). 그러나 인생의 끝자락에서라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변화될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리십니다. 그제서야의 은혜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 몸으로 체험해서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제서야의 은혜를 체험해야만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우리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 이미 그제서야의 은혜를 받은 사람과 앞으로 그제서야의 은혜를 받을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3. 므낫세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므낫세는 그제서야의 은혜를 받은 후에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첫째로 우상을 타파하였습니다. 그는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였습니다(15절). 그제서야의 은혜를 받으면 모든 우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배를 회복하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렸습니다(16절). 그제서야의 은혜를 통해서 무너졌던 예배가 영과 진리의 예배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오직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그는 유다를 명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16절). 그제서야의 은혜가 임하면 섬기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므낫세는 그제서야의 은혜를 받기 이전과 받은 후의 신앙이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이와 함께 이루어진 또 다른 변화가 있습니다. 그는 그제서야 은혜를 받은 후에 왕으로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였습니다. 14절의 말씀은 므낫세가 자신의 자리에서 감당해야 하는 본질 적인 것들입니다. 그는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영성은 신앙 영성과 삶의 영성이 하나가 되어 함께 회복되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이 연결되어야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영성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헌신을 강조할 때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씀이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계2:10). 이 말씀으로 교회에서 죽도록 충성하면 하나님이 큰 복 주신다고 적용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전한 요한의 의도와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지금처럼 교회 건물이 없어서 가정에서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만 많은 일을 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의 의도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믿음을 죽을 각오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충성하고 세상에서도 죽을 각오로 믿음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한 그제서야의 은혜는 신앙과 삶이 동시에 회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보다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통해 반발심이 아니라 은혜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당하는 환란이 연단이 되어 열매를 맺게 하시며, 크게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이 받으시며, 끝자락에서라도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그제서야의 은혜를 통하여 신앙과 삶이 함께 회복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영성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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