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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이전과 이후?/ 요한복음 21장 15-19절/ 2015년 4월 5일 부활주일 설교
조영식 2016-08-10 추천 4 댓글 0 조회 530




201545일 부활주일 설교

설교 제목 : 십자가 이전과 이후?

설교 본문 : 요한복음 2115-19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0. 들어가는 글

오늘은 4월 첫째 주일이며 부활주일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서 한 주간 동안 고난 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였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고난은 지나가는 터널이라는 것입니다. 항상 고난 주간은 지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동굴처럼 막혀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고난 주간을 건너뛰고 지킨 부활절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해야만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반드시 지나감을 믿고 부활의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는데 세 번 사랑하느냐를 통하여 그를 회복시켰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물어보았는데 베드로는 필레오의 사랑으로 답변했다는 말씀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는 베드로가 십자가 사건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도님들과 은혜를 나누면서 부활의 믿음을 바로 새롭게 세워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자신의 신뢰에서 주님의 신뢰로 변화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 이전에 자신만만하였습니다. 주님이 고난을 받아 죽고서 삼일만에 살아난다고 말할 때 그는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장담했습니다(16:22). 또한 그는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장담했습니다(26:35). 이런 베드로의 장담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에게 찾아와서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답변합니다(15). 그의 답변 속에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그는 철저히 자신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자신을 더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 드디어 자기를 부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도 첫 번째 대답과 일관되게 자신을 부인하였습니다(16). 반복되는 세 번째 질문에서는 근심하면서 아직도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지 못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면서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대답했던 주님 그러하나이다까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를 더욱 강조하여 답변했습니다(17). 우리는 자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수록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십자가 사건 이후에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더 신뢰하기 시작할 때 어린양을 먹이라는 사역을 맡겼습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 사역자는 어린양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역자는 아직 십자가 사건 이전의 자기 확신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자기 확신으로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장담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신뢰가 가야 하는데 오히려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또한 목회자들도 자신의 확신으로 교회를 성장시키겠다고 장담합니다. 그런 목회자를 만나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자기 확신이 강할수록 악순환에서 빠져서 벗어나기가 힘들게 됩니다. 우리들이 베드로처럼 실패한 인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더 이상 신뢰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부디 자신에 대한 확신과 신뢰가 철저히 무너져서 오직 부활하신 주님을 더 신뢰함으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비교의 사랑에서 유일한 사랑으로의 변화

우리는 먼저 베드로의 답변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질문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첫 번째 질문에서는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질문했습니다(15). 베드로가 십자가 사건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여 이기려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그의 마음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물었습니다(16). 주님은 처음의 비교 단계를 넘어서서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사랑을 살폈습니다. 베드로는 두 번째의 비교하지 않는 사랑의 물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주님이 유일한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이전의 비교하는 사랑에서 십자가 이후에 비교하지 않는 유일한 사랑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도 처음에 주님을 만날 때 다른 것들과 비교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할수록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을 향한 사랑이 비교하는 사랑에 머물러 있다면 교회를 다니면서 상처를 받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유일한 사랑이 되었다면 어떤 일이 생겨도 결코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배우자도 동일합니다. 처음에서 다른 이성과 비교하여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사랑이 깊어지면 다른 이성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해 살면서도 다른 이성과 비교하며 살고 있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자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다른 자녀들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녀들도 부모에게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비교하는 사랑에서 유일한 사랑으로 변화될 때 신앙도 감사고 넘치고, 가정도 행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3. 내가 원하는 대로에서 주님이 원하는 대로의 변화

예수님은 베드로와 사랑하느냐의 대화를 세 번 나눈 후에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19).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을 따르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쳐줍니까? 주님은 그에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합니다(18). 그가 십자가 사건 이전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니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주님이 원하는 곳으로 다니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 이후에 성령을 받고 주님이 원하는 대로 다니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사랑을 통한 변화는 내가 원하는 삶에서 주님이 원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주님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까? 내가 원하지 않아도 주님이 원하면 순종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십자가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이기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살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함께 지내는 사람은 피해를 받습니다. 교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열심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한다면 다른 성도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이 원하는 대로 해야만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하는 식구가 있다면 다른 식구가 상처를 받습니다. 가족 간에 서로 원하는 것을 조율하며 살아야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진정 부활의 기쁨이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 우리가 자신의 신뢰와 확신이 십자가 사랑으로 무너져서 자기를 부인하게 하시며, 우리들이 다른 것과 비교하는 사랑에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랑으로 변화되게 하시며,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주님이 원하는 삶으로 순종하게 하셔서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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