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9일 주일 설교
설교 제목 : 무슨 상관이 있느냐?
설교 본문 : 요한복음 21장 19-23절
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0. 들어가는 글
부활절 셋째 주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성완종 리스트가 정치권을 강타하면서 세월호 1주기 추모가 묻히는 형국입니다. 성완종 리스트와 세월호 사건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두 사건이 뿌리가 같기 때문에 숨겨진 진실이 규명되어야 한다는 공동점도 있습니다. 우리들이 진실을 밝히는 일에 마음을 모아 기도할 때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절에 우리 성도님들과 십자가 이전과 이후의 삶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다시 복기하면 첫 번째로 십자가 이전은 자신이 주인 노릇 하였다면 십자가 이후에는 자신이 죽고 주님이 주인 노릇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십자가 이전은 주님과 세상을 비교하는 사랑이었다면 십자가 이후에는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랑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십자가 이전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였다면 십자가 이후에는 자신이 원치 않아도 주님이 원하면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절에 선포했던 본문의 말씀을 계속 연결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에게는 “나를 따르라”고 하였지만 요한에게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19절). 여기에서 베드로와 요한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생겼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제자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주님은 양들을 어떻게 돌보십니까?
선자 목자 되신 예수님은 양들을 기질에 따라서 돌보십니다. 주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베드로와 요한은 서로 기질이 달랐습니다. 베드로가 사냥꾼 기질이라면, 요한의 농부 기질이었습니다. 이런 기질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베드로는 사냥꾼처럼 열정적으로 돌진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농부처럼 차분하며 꾸준한 신앙이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베드로와 같은 사냥꾼 기질입니까? 아니면 요한과 같은 농부 기질입니까?
사냥꾼의 기질에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들에게는 사냥감이라는 목표물이 있을 때 가장 의욕이 넘칩니다. 신앙에서도 사냥꾼 기질은 믿음의 목표가 생길 때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열정이 생깁니다. 그러나 목표를 잃으면 의욕을 상실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을 때 목표를 잃고 좌절하여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냥꾼 기질인 베드로에게 목표를 제시하여 양육하였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해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목표를 주었습니다(마16:18).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고 목표를 주면서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19절). 실제로 베드로는 로마에 들어가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순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님은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돌진하는 베드로를 기질대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농부의 기질에게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들에게는 씨를 뿌리고 자라날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신앙에서도 농부 기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대상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으면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농부 기질인 요한에게 어떤 목표 보다는 기다림으로 양육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요한에게 베드로처럼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주님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따르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나를 따르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돌이켜 보니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스스로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20절). 실제로 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되어서 가장 오랜 시간을 기다리면서 주님의 환상을 보고 계시록까지 기록 하였습니다. 주님은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요한을 기질대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2. 신앙에 서열이 있는가?
베드로와 요한의 기질을 보면서 “누가 더 믿음이 우월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를 수제자로 판단하면서 제자들의 신앙에 서열을 정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베드로처럼 사냥꾼 기질이 요한처럼 농부의 기질보다 더 우월해 보입니다. 지금도 교회에서 사냥꾼 기질의 열심있는 신앙이 농부 기질의 차분한 신앙보다 더 부각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본장에서 베드로는 주님과 사랑에 관련된 대화를 세 차례나 나누었습니다(15~17절). 그리고 그에게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까지 말해주면서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19절). 이런 사냥꾼 기질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어떤 목표를 이루었다고 성공한 신앙으로 주목받습니다. 이처럼 기질이 그런 것을 정말 성공한 믿음으로 간증해야 합니까? 과연 그렇습니까?
3. 무슨 상관이 있는냐?
베드로가 요한의 사역이 궁금하여 주님께 물었습니다(21절). 예수님은 “네게 무슨 상관이냐?”라고 합니다(22절). 그가 다른 제자들과 경쟁의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역자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경쟁의식입니다. 이 경쟁의식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판단하며, 비난하는 부정적인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의 관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농부 기질의 마리아는 차분히 앉아서 주님의 뜻을 알고자 기다렸습니다(눅10:39). 그러나 사냥꾼 기질의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눅10:40). 사냥꾼 기질의 마르다는 비교를 통하여 동생 마리아를 비난하면서 자신의 열심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주님은 비교하는 마르다에게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고 합니다(눅10:41,42). 여기서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와 동일한 답변입니다.
진정한 충성은 다른 사람과 상관하지 말고 한 가지만이라도 자족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비교하면서 상관하는 것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여 상처받는 일이 생깁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 13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다른 교회와 비교하여 상관하면 근심과 염려 때문에 감사가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부족한 저를 대단한 목사님과 비교하면 능력이 없다는 열등감 때문에 의기소침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비교하며 상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만 상관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과 상관이 커질수록 사람과 비교하는 상관은 줄어들게 됩니다. 만약 우리의 사역이 사람과 상관은 많으면서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면 무슨 상급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오직 하나님과만 상관있다면 다른 사람의 비교하는 상관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사람들과 비교하는 상관은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과만 상관하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들이 어떤 기질인지를 깨닫고 주님을 만나서 기질대로 양육과 돌봄을 받게 하시며, 신앙에는 서열이 없음을 깨닫고 각자의 기질대로 주님께 선하게 쓰임 받는 믿음이 되게 하시며, 사람들과 상관하여 상처받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주님과만 상관하여 성숙해지는 신앙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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